창업이란 새로운 기업을 시작하는 것만은 아니다.

갑작스런 경영악화로 망했다가 다시 문을 여는 것도 넓게 보면 창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척박한 기업환경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기술력과 사업성이 우수한
기업의 재기는 단순한 창업보다 10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리테일네트워킹"은 지난해 12월 다시 일어선
벤처기업이다.

창업자는 여성벤처기업인 이부경(46)사장.

이 사장의 재창업스토리는 여성 예비창업가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지난 81년 30세의 나이로 일본유학길에 오른 이 사장은 일본 공학원
정보처리과를 졸업한후 마쓰시다통신공업 다이코통신등에서 근무하다
10년만에 귀국했다.

이때부터 남성위주의 국내 기업문화와 이 사장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나이많은 여성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취업이 어려워진 그녀는 91년 일본
다이코통신 레지폰사등과 합작, 한국다이코통신을 만들었다.

그녀가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유학시절의 전공을 살린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당시 일본 유통업계에 불어닥친 정보화물결이 우리나라
에도 상륙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

한국다이코산업은 창업 3년만에 20억원을 들여 독립형 중소유통업체의
매출및 경영정보를 관리해 주는 레지폰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 유통업계
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유일한 레지폰시스템은 바코드단말기와 네트워크가
설치된 편의점 등 불특정 가맹점으로부터 하루하루 정보를 전송받아 매출
추이 재고관리 수익변화 등을 분석, 다음날 해당 점포에 알려주는 유통
정보서비스망이다.

이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금전등록기를 사용할 때보다 인건비는 25%,
재고물량은 절반가량 감소하고 상품손실액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

따라서 가맹점들은 설치비용(6백만원)과 매달 서비스이용료(바코드단말기
1대당 10만원)를 감안하더라도 1년만에 투자비를 건지게 됐다.

이로인해 한국다이코산업은 가맹점 2백50개, 연간 매출액 20억원 규모의
중견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위기가 닥쳐왔다.

금융위기와 경기위축으로 신규 가맹점이 줄어들고 수익이 감소하자
대주주들이 사업전망에 의문을 품게 된 것.

급기야 한국다이코통신은 대주주의 건설회사로 넘어가 사업자체가 없어질
운명에 처했다.

이 사장은 7년간 피땀흘려 일궈온 사업을 포기할수 없었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그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흩어진 사원과 고객을 찾아다니기를 두달 남짓.

드디어 지난해 12월 회사를 되찾아 리테일네트워킹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발했다.

사원은 30명에서 10명으로 줄었지만 부설연구소를 갖춰 유통업체 경영과
물류센터 운영에 대한 컨설팅업무도 시작했다.

1백70개로 줄었던 가맹점도 2백개 이상으로 늘어나고 올해 매출액도
지난해 수준인 20억원은 무난할 전망이다.

9년째 "아침 7시 출근, 밤 11시 퇴근"으로 하루를 보내는 이 사장은
"남성중심의 냉혹한 기업환경에서 여성기업가는 다른 사람보다 2배이상
일하고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해야만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할수 있다"며
"남성을 이기려는 무모함보다 여성의 특성을 살리면서 공존하려는
"윈-윈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에서 쏟아내는 여성우대정책이 오히려 여성을 온실의 화초처럼
나약하게 만들고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을수 있다고 덧붙였다.

(02)581-1151

< 정한영 기자 ch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