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을 하고 다니는 모 여성 국회의원이 수년전 외국의 여자화장실에 들어
갔다가 망신을 당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이는 섹스(Sex)와 젠더(Gender)를 혼동한 것이다.

섹스는 타고난 생식기에 따른 남녀 성별 구분인 반면 젠더는 성장환경에
따라 자신이 추구하는 성, 즉 주체적 성별을 나타낸다.

따라서 남장 여성국회의원의 섹스는 여성이고 젠더는 남성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젠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소아내분비 심리학자인 머니
박사다.

그는 외부생식기가 모호한 소아환자들에게 젠더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 이후 세계여성학회에서 섹스보다는 젠더라는 단어가 타당하다고 결의해
최근엔 여권신장의 상징적 단어로 정착해 그 쓰임새가 점차 확장돼가는
추세다.

어느날 진료실에 아주 곱상하게 생긴 23세의 P군이 찾아왔다.

우선 외부생식기를 진찰해보니 페니스와 음모는 정상인데 고환은 도토리만
할 정도로 매우 작았다.

염색체검사를 해보니 놀랍게도 47XXY로 나왔다.

정상남자는 46XY, 정상여자는 46XX인데 염색체 하나가 더 있었다.

"현재의 고환상태로 보아 남성호르몬 분비가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남성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남자구실을 할 수가 있지요"

"저... 차라리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게 해주세요"

갑작스런 주문에 놀라 이유를 물었다.

P군은 고추를 달고 나와 어려서부터 남자로 살아왔지만 어느날 부턴가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이 괴롭게 생각됐다.

"철이 들면서 남자라는 역할이 웬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더군요.

또래의 여자친구들과 데이트를 하면서도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어요.

도저히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을뿐 아니라 오히려 잘 생긴 남자를 보면
가슴이 뛰고 흥분되기까지 합니다"

다소곳한 자세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P군의 표정은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누구든지 그를 보면 여성으로 착각하겠구나 싶었다.

부모형제에게도 말못하고 지켜온 비밀, 23년간 자기에게 맞지 않는 섹스와
젠더사이에서 고민한 P군은 이제 더이상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비활동성이어야 할 X염색체가 활동성으로 나타나면서 여성의 젠더를 갖게
된 성전환증 환자의 눈물을 보며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