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부치 내각' 출범] '총리출신 대장상에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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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카하시만큼만 해달라"
미야자와 기이치 신임 대장상이 71년전 다카하시 고래키요에 이어
두번째로 총리출신 대장상이 되자 일본 언론들이 요구한 주문이다.
다카하시는 지난 20년대 일본이 극심한 경제침체를 겪을 당시 총리를
거친 후 나중에 대장상으로 변신한 인물.
총리 때는 경제문제에 결단을 내리지 못해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27년 대장상에 취임하자 이틀만에 과감하고도 대대적인 개혁조치를
취했다.
그가 당시에 취한 조치들로 경제가 살아났으며 오늘날도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다.
미야자와가 다카하시와 같은 역정을 걷자 이왕이면 "다카하시를 빼다
박으라"는 게 일본언론의 요구다.
미야자야도 지난 92년 총리로 있을 때 금융기관의 부실채권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만 했지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었다.
이제 대장상이 된만큼 과감하게 나서라는 얘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금은 앞뒤를 잴 겨를이 없다"며 "다카하시
전총리처럼 신속하고도 강도높은 특단의 개혁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사히신문도 사설에서 "말보다 행동이 앞섰던 다카하시를 닮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야자와에게 다카하시는 "교과서"가 돼 버렸다.
< 김수찬 기자 kimsc@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1일자 ).
미야자와 기이치 신임 대장상이 71년전 다카하시 고래키요에 이어
두번째로 총리출신 대장상이 되자 일본 언론들이 요구한 주문이다.
다카하시는 지난 20년대 일본이 극심한 경제침체를 겪을 당시 총리를
거친 후 나중에 대장상으로 변신한 인물.
총리 때는 경제문제에 결단을 내리지 못해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27년 대장상에 취임하자 이틀만에 과감하고도 대대적인 개혁조치를
취했다.
그가 당시에 취한 조치들로 경제가 살아났으며 오늘날도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다.
미야자와가 다카하시와 같은 역정을 걷자 이왕이면 "다카하시를 빼다
박으라"는 게 일본언론의 요구다.
미야자야도 지난 92년 총리로 있을 때 금융기관의 부실채권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만 했지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었다.
이제 대장상이 된만큼 과감하게 나서라는 얘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금은 앞뒤를 잴 겨를이 없다"며 "다카하시
전총리처럼 신속하고도 강도높은 특단의 개혁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사히신문도 사설에서 "말보다 행동이 앞섰던 다카하시를 닮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야자와에게 다카하시는 "교과서"가 돼 버렸다.
< 김수찬 기자 kimsc@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