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상호 외교관추방으로 불거진 한국과 러시아의 분쟁은 또하나의 굴절된
외교사를 기록하며 마무리 되고 있다.

정부는 전날 발표를 뒤집고 30일 올레그 아브람킨 참사관의 재입국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번 사건을 통해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

자국에 대한 외교적 예우를 게을리한 한국을 국제적으로 망신시켰다.

또 러시아 주재 한국 정보외교관의 숫자와 활동범위도 의도대로 조정했다.

반면 한국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고 말았다.

국제적 망신도 망신이지만 외교의 기본인 "호혜"의 원칙은 완전 실종됐다.

이번 한.러 외교전은 이같이 실패한 결과보다도 우리 국민들에게 상당한
자괴감과 패배감을 안겼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제기했다.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는 분쟁기간 내내 안기부에 끌려다니며 소신있는
외교를 펼치지 못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안기부는 자존심만 내세우다 이 지경까지 만들고 말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을 실망케 한 것은 사건이 터진 7월4일 이후 한번도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 적이 없는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아브람킨 참사관 재입국문제에 대해 끝까지 거짓말을 늘어 놓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를 인정하고 말았다.

외교에 있어 득과 실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정부는 감출 자신도, 능력도 없는 일을 무리하게 밀다 국민적 자존심만
망가뜨린 것이다.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진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무지한 외교행태가
지속될지 답답할 뿐이다.

김용준 < 정치부 기자 juny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