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은행간 합병이 마침내 성사됐다.

그러나 발표의 전격성에도 불구하고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에 합의
하기까지는 여러차례 난관이 있었다.

특히 합병발표일이 지난 30일밤 늦게야 결정되는 등 막판 발표를 앞두고는
숨가뿐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배찬병 상업은행장과 이관우 한일은행장이 본격적인 합병논의를 시작한
것은 지난 7월초.

5월에도 세차례 만나 합병을 논의했지만 말그대로 원론에 그쳤었다.

지난 20일이후 합병논의는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두 행장을 불러 "외자유치 승인불가방침"을 전달한게
계기가 됐다.

금감위는 대놓고 "자발적 합병"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자유치가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판단한 두 행장은 이틀에 한벌꼴로
무릎을 맞댔다.

비밀리에 "합병추진팀"도 가동했다.

각각 8명씩으로 구성된 합병팀은 외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합병을
논의했다.

굵직한 문제는 행장간 담판에서 이뤄졌다.

행장들 손으로 넘겨진 사안은 크게 세가지.

합병은행이름 등기문제 합병비율이었다.

이중 등기는 절차의 신속성을 위해 상업은행의 것을 사용키로 쉽게 합의
됐다.

은행이름도 당분간 "상업한일은행"을 사용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합병비율에 대해서는 논란이 빚어졌으나 "발표를 앞당기라"는 성화에
못이겨 "대등합병선언후 실사를 통해 결정"으로 결론지어졌다.

두 행장이 커다란 골격과 합병원칙에 합의한 것은 지난 29일.

발표 D-데이는 8월4일로 잡혔다.

마지막 고비는 30일.

합병타결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은행은 벌집 쑤신듯 뒤집혔다.

노조는 한때 "자리보전을 위한 밀실야합"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배 행장은 30일 오전 "직원들이 순수한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며 사의를
표명,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성층권으로부터 "발표 D-데이를 31일로 앞당기라"는 주문이 온 것도 바로
이때.

이미 합병사실이 노출된데다 직원들의 동요가 심해 자칫하면 물건너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배 행장은 사의를 철회, 오후 늦게 은행에 돌아왔고 즉시 노조를 만났다.

배 행장은 고용조정의 유연성을 보장하겠다는 말로 노조를 설득했으며
노조도 이를 받아들였다.

같은시간 이 행장도 노조설득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마지막 고비를 넘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합병발표일은 31일로 확정됐다.

외부에 머물던 합병팀도 은행에 돌아왔다.

두 은행장은 밤늦게까지 발표리허설을 가졌다.

이때 가장 초점을 맞춘 것은 단연 "정부의 강요는 없었다"였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