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엔화 방치"를 택한 것인가.

오부치 게이조 새정권이 들어서자 마자 예상밖의 말이 나오고 엔화가
곤두박질치자 국제금융가가 긴장하고 있다.

새 정권이 "시장개입"을 하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체질강화"로
엔화를 방어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엔화약세가 지속되면 아시아경제가 또한번 요동칠 수 밖에 없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뉴욕과 런던 등 국제금융시장에선 이미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본에 변화가 없다면 올 연말까지는 엔화약세를 돌이키기 쉽지 않다는게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전망은 대체로 세가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는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미야자와 대장상의 발언이고
둘째는 일본의 통화정책이 앞으로 긴축완화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끝으로 미국과 일본간 "경제 펀더멘틀"의 차이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힘들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우선 미야자와 대장상의 발언은 그 자체가 "엔약세를 방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즉각 시장에 민감한 영향을 미쳤다.

엔화는 곧바로 도쿄에서는 달러당 1백43엔대, 뉴욕과 런던에서는 1백44엔대
까지 떨어졌다.

"원칙적인 말을 한 것일 뿐"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다들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

단기적인 시장개입 보다는 내수부양과 금융개혁 등 중장기적인 "정공법"으로
대응하기로 방향을 잡았다는 해석이다.

경제상황이 조만간 호전되지 않을게 확실한 상황에서 시장개입 같은
임기응변적인 조치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미국 쪽의 외환분석가들도 대부분 그렇게 보고 있다.

"클린턴 섹스스캔들이 없었더라면 더 떨어졌을 것"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다이치 강쿄은행 뉴욕지점의 수석딜러인 토마스 아놀드는 "엔매입-달러매도
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던 딜러들은 황급히 포지션을 바꾸느라 정신이 없었다"
며 "제정신을 가진 딜러라면 지금 엔을 사둘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여기에다 일본정부의 통화정책도 엔약세를 부추기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자산 디플레 방지와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폴 크루그만 등 미국의 경제학자들도 통화증발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미국제경제연구소(IIE)의 아담 포젠 연구원 같은 경우는 최근 발표한
"일본의 경제성장 회복"이라는 저서에서 "연간 3%의 인플레 목표를 세우고
통화공급을 확대하라"는 "목표 인플레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미일간 경제 펀더멘틀은 엔화회복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당초 "0%"로 예상했던 미국의 2.4분기 성장률은 1.4%로 나타난 반면
일본의 경제지표는 한결같이 내리막을 치닫고 있다.

기업도산은 늘어나기만 하고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일본기업들의 신용등급
을 계속 내리고 있다.

그러면 엔화는 언제쯤 회복세로 돌아설 것인가.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이에대해 "빨라야 연말이나 내년초"라고 보고
있다.

당분간은 약세가 지속돼 달러당 1백40엔대 후반으로 밀려나고 심할 경우
연말안에 1백50엔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많다.

"시장개입을 않겠다"는 미야자와의 발언대로라면 엔화는 일본경제의
펀더멘틀이 개선돼야 회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일본경제의 펀더멘틀 개선은 오부치내각의 "경제재생 처방"이
본궤도에 올라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