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교통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고속철도사업계획 변경안을 보면 그저
딱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동안 수없이 뜯어고친 것도 모자랐는지 지난
4월부터 검토해온 수정계획을 최종 확정하는 단계에서 2단계사업 착공시기를
2004년으로 2년 앞당긴데다 호남고속철도 건설계획도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
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고속철사업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뜯어
고치고 얼마나 많은 예산이 더 낭비될지 모를 일이다.

완공도 되기 전에 벌써 애물단지가 돼버린 경부고속철도 공사의 문제점을
시시콜콜 다시 들출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최종 수정계획에서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난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또한번 지적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공사계획이 정치논리에 좌우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신중한 검토와
충분한 준비없이 착공을 서두른 것부터가 정치논리 때문이지만 대전 및
대구역사의 지하화 여부나 고속철노선의 경주 경유를 둘러싼 혼선도 정치색
이 짙은 집단이기주의 탓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주 포항 울산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핑계로 2단계 사업의
착공시기를 처음 계획보다 2년 앞당기는 동시에 중단했던 호남고속철도
공사를 다시 추진하기 위해 우선 내년 예산에 50억원을 요구하기로 한 것을
보면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인다. 건교부는
도대체 언제까지 정치논리에 놀아나는 "오락가락" 행정을 되풀이해 아까운
국민의 세금만 축낼 작정인가.

또 한가지 강조할 것은 경부고속철도 공사의 추진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라는 점이다. 고속버스나 자가용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승객을
흡수해 화물체증을 해소하고 물류비용을 줄이자는 것이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추진한 원래 취지였다. 그렇다면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고속철노선이
경주를 경유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가뜩이나 취약한 경부고속철의
경제성만 약화시킬뿐 전혀 설득력이 없다.

마찬가지로 호남고속철도 공사를 오는 2000년대 초에 서둘러 착공해야 할
정도로 이 지역의 화물적체가 심하고 물류비용부담이 무거운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아직 복선화가 안된 광주~목포구간의
복선화공사를 서두르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비판여론을 건교부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대로라면 호남고속철 역시 경부고속철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는 형편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4월초 경부고속철에 대한 감사원의 특검결과가 발표된
뒤 서둘러 마무리된 이번 수정계획에서도 눈가림식 졸속처리와 허술한
경제성분석이 여전하다는 관계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고 온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더이상의 비효율과 낭비가
없도록 정책실명제를 철저히 시행하고 사후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