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정병을 선발 육성해온 병무청이 외청 독립 28년만에 영욕의
역사를 뒤로한 채 3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시대를 마감하고 대전청사로
이전했다.

병무청은 6.25전쟁 직후 병역기피자 속출 등 문란해진 병무기강을
수립하라는 시대적 요청속에 국방부 병무국에서 지난 70년 8월 외청으로
독립, 후암동 시대를 열었다.

병무청은 이후 "어떠한 압력이나 금력,정실도 단호히 배제하고 부정요인을
제거한다"고 적힌 서약문을 내걸고 투명한 병무행정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
었다.

특히 "병무행정을 바로잡고 병역기피자를 사회에서 제거,사회기강을
확립하라"는 등의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모든 병무담당자들이 암송,
실천토록 하기도 했다.

73년과 74년은 "병무부정 근절의 해"와 "병역기피 일소의 해"로 정하고
대대적인 서정쇄신운동을 펼쳐 병역기피자가 종전의 연간 1만명에서 1백명
이하로 떨어지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같은 혁신 노력에도 불구,고위공직자나 부유층,연예인,스타급
운동선수,유력인사 등과 관련된 병역비리가 끊이지 않아 지난 수십년간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와 수치를 감수해야만 했다.

더욱이 지난 6월에는 병무청 모병연락관 원용수준위(53) 등이 관련된
조직적인 병무비리사건이 발생, 또 한번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병무청은 최근 병무관련 공무원의 순환보직제와 모병제 폐지,고위공직자
및 자제에 대한 병역실명제 도입 등 일련의 제도개혁을 긴급처방으로
제시했으나 비리척결과 공평무사한 병무행정에 대한 실천과제는 남겨둔 채
대전청사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장유택기자 changyt@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