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과연 일본보다 나은가.

월가의 전문가들 사이에 요즘 "구조조정의 한.일 비교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의 구조조정 과정을 지켜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하겠다는 게 주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개혁 만큼은 한국이 화끈하게 잘 한다"며 후한 점수를
줘왔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월가 사람들의 실망은 크게 두 가지다.

구조조정에 대한 한국내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정도"를 넘어섰다는 점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드러난 관료집단의 무능-바꿔말해 "위기
관리 능력 부재"다.

구조조정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지나친 저항에 대해서는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를 거론하며 심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퇴출이 결정된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제 몫 챙기기"와 인수기관에 대한
조직적인 업무방해가 그 것이다.

특히 일부 퇴출은행 노조원들의 집단적인 업무방해 행위는 일본 3대 증권사
의 하나로 작년 11월 돌연 도산한 야마이치증권의 임직원들이 보여준 "퇴출
결정 이후"의 모습과 정면으로 비교당하고 있다.

야마이치증권의 당시 사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눈물을 흘려가며 자신의
무능을 공식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는 어떤 기업이 야마이치를 인수하건 종업원들을 최대한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장의 이런 모습에 감동한 직원들은 당장 하루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거의 무보수로 청산작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고객들은 23조9천억엔에 달하는 예탁금을 큰 혼란없이 인출할 수
있었다.

미국의 메릴린치 증권사가 야마이치를 인수키로 결정했던 데는 이 회사의
내재가치를 평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원들의 높은 윤리의식도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것이 월가 사람들의 분석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은행에서 "황제"로 군림했던 은행장들이 퇴출결정을 닫자
마자 "나 몰라라"는 식으로 퇴장해버렸다.

직원들은 전산을 마비시키거나 인수은행 창구에 몰려가 업무를 방해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한심하기로는 정책당국도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게 월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당사자들의 반발에 대한 사전 대비책도 없이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으로
구조조정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무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는 지난 89년부터 92년 사이에 무려 7백37개의 저축대부은행(S&L)을
퇴출시킨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대비되고 있다.

당시 FDIC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실은행 퇴출조치를 금요일 영업
종료를 전후해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FDIC와 인수은행 직원들로 구성된 퇴출은행 인수팀은 선발대를 영업종료
15분 전에 퇴출은행에 진입시켜 조용히 접수절차를 밟았다.

감독당국은 이 절차가 끝난 뒤에야 퇴출은행 경영진에게 퇴출사실을
통보했다.

FDIC는 이같은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 뒤 언론에 이 사실을 발표했고
인수은행은 주말을 이용해 인수작업을 완료했다.

이처럼 빈틈없는 절차를 밟은 결과 미국의 P&A(자산부채 이전) 방식에 의한
부실은행 처리는 대부분 4개월 미만의 짧은 기간 내에 잡음없이 매듭지어졌다

후발은행과 제2금융기관들을 퇴출시키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부실"을 드러
냈던 한국이 후속 은행합병 등 임박한 2단계 구조조정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월가 사람들은 주시하고 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