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후 50년간 한국기업들은 극심한 부침을 거듭했다.

65년 국내 1백대기업중 지난해말까지 생존한 기업은 13개에 불과하다.

상위 10대기업과 10대기업집단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65년 국내 10대기업 가운데 97년에 10위권을 고수한 기업은 전무한 실정
이다.

10대그룹중 1960년의 위치를 고수한 그룹은 삼성 LG 등 2개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기업의 "흥망성쇠기"를 간추린다.

<> 50년대(사업기회의 포착과 초기자본의 축적) =절대적인 물자부족
상황속에서 면방직 제분 제당 등 소비재부문에 진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50년대 전후 복구과정에서 기업들은 귀중한 사업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전후복구와 원조경제라는 특수한 상황하에서 정부와 기업간에
유착관계가 형성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대기업=특혜"란 뿌리깊은 편견과 반기업감정이 싹튼 것도 이때부터다.

<> 60년대~70년대초(경제개발의 파트너로 도약) =정부와 기업 사이에
생산적인 협력관계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 추진이 계기가 됐다.

국내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사업"에 참여, 다각화 전략을 추진했다.

섬유 합판 가발 등 노동집약적 수출품목을 중심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
하는 한편 전자 자동차 합섬 등 신규분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당시 창업 1세들은 왕성한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현장관리에서 수주,
투자검토에 이르기까지 경영의 전과정을 총괄했다.

한편 60년대 후반 불황이 닥치면서 외부자금 의존도가 높고 산업구조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다.

8.3조치와 부실기업체정리 등 정부개입 과정에서 60년대 대표적 기업이었던
삼호 화신 천우사 등이 사라졌다.

<> 70년대 중반~3저호황(대기업주도의 양적확대 지속) =기업들은 정부의
중화학투자에 적극 부응, 사업다각화를 더욱 재촉해 나갔다.

종합무역상사 지정과 중동건설 특수가 국내기업의 해외사업 확대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80년 종합상사를 통한 수출비중이 전체의 40% 이상 차지할 정도였다.

75년부터 시작된 중동건설 특수를 타고 대기업들이 거의 모두 해외건설
분야에 발을 뻗혔다.

이어 3저기간 동안 기업들은 최대의 호황을 향유했다.

이를 바탕으로 각사가 21세기 "초일류기업"을 표방, 첨단기술개발 경영혁신
국제화 등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창업 2세대들이 경영계에 등장, 사업규모 확장과 함께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그룹조정 기능을 강화했다.

30대 기업집단의 계열사수는 74년 1백39개에서 86년에는 2백76개로
불어났다.

<> 80년대 후반~97년(급변하는 대외환경 속에 성공체험 매몰) =국내기업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대내외 경영환경의 조건들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87년이후 높은 임금인상률과 노사갈등분출로 고비용구조가 고착화됐다.

90년대 중반 반도체 조선 등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등 일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구조적 약점도 심화됐다.

기업들은 글로벌화에 대응, 사업구조 재구축과 핵심역량 확보에 나섰으나
실질적인 경쟁력 제고나 수익창출로 이어지진 않았다.

<> IMF체제(퇴출과 재도약의 기로) =97년이후 30대그룹중 13개가 부도를
내거나 협조융자를 받았다.

"대마불사" 신화가 붕괴된 것이다.

나머지 대기업들도 IMF체제의 원인제공자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IMF사태는 국내기업에게 사업구조조정 경쟁력강화 투명경영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 등 근본적인 경영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