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널리 읽혔던 소설중의 하나가 김홍신의 "인간시장"이다.

신비한 무술을 지닌 주인공 장총찬이 부패한 관리, 비리경찰, 조직깡패,
파렴치범 등 사회악들을 혼내준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힘없고 빽없어 억눌려지내던 서민들은 장총찬의 활약을 통해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신승수 감독의 신작 "엑스트라"는 90년대판 "인간시장"이라고 할만 하다.

영화판의 주변부 인생인 만년 엑스트라들이 벌이는 코믹한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박봉수(임창정)와 김왕기(나한일)는 연기재능도 없이, 그저 영화가 좋아
촬영현장을 따라다니는 엑스트라들이다.

영화에대한 열정이야 안성기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같은 인기배우를
능가하지만 카메라만 돌아가면 실수를 연발하는 삼류배우들이다.

우연히 젊은 검사와 수사관역을 따낸 이들은 단란주점에서 연기연습을
하다가 "권력의 맛"을 보게 된다.

비밀영업을 하다가 들킨 주인이 찔러주는 촌지에 "세상은 정직하게만 살면
손해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나쁜 사람도 혼내주고 돈도 벌어 근사한 영화를 찍자며 스스로를 정당화시킨
이들은 대담하게 사기극을 벌여 나간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드는 줄도 모르고 겁없이 마약밀매단을 털려던 봉수와
왕기는 이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신승수 감독은 85년 "장사의 꿈"으로 데뷔, "달빛사냥꾼" "수탉" "가슴달린
여자" "할렐루야"에 이르기까지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이를
코미디로 풀어내는 재능을 보여왔다.

신작에서 신 감독의 재담은 더욱 극단을 달린다.

임성훈(아나운서) 임하룡(코미디언) 등 연예인은 물론 동료인 정지영 감독을
카메오(유명인들의 잠깐 우정출연)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박카스광고"까지
주저않고 패러디한다.

입담좋은 임창정 역시 쉴새없이 떠들며 감독의 "웃겨야 산다"는 철학을
뒷받침한다.

스크린밖 관객을 향해 던지는 듯한 대사도 간간히 집어넣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신나게 웃고 악당들이 골탕먹는 모습에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나 뒷맛은 조금 허전하다.

어딘지 낡아보이는 영화문법,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 재담에 짓눌려
무너져버린 영화적 완성도가 관객을 진지한 감동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사회적 모순의 본질을 해부하기보다는 그 일그러진 모습에 냉소만 보낸
탓이다.

한편 "엑스트라"는 이달말 캐나다에서 열리는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 각국 영화들과 경쟁을 벌인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