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 사는 L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잘 나갔다.

상장기업은 아니지만 이름이 꽤 알려진 중견기업의 사장이었다.

재산도 적지 않았다.

일산아파트를 포함, 집이 2채였고 물려받은 토지도 적지 않았다.

족히 20억원 어치는 됐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남은건 가족 뿐이다.

집도 땅도 모두 은행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이렇게 됐다.

대표이사 당시 섰던 보증이 평생 모은 재산을 뺐어간 것이다.

L씨는 사실 억울한 점이 적지 않다.

오너들이 그에게 보증을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지난해 8월께 기존 대출금의 만기연장 때 오너들은 약속이나 한듯 외국에
나가 있었다.

은행에서는 대출금이 연장되지 않으면 회사가 부도난다며 그의 도장을
강요했다.

대출금은 20억원이었다.

담보로 잡힌 회사 부동산이 50억원어치는 돼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막상 부도가 나자 일은 커졌다.

담보부동산이 경기침체 여파로 번번이 경매에서 유찰됐다.

10억원에도 팔리지 않자 은행은 L씨의 재산에 눈을 돌렸다.

결국 그는 알거지가 됐다.

보험회사 사장 출신의 K씨.

그는 지난 96년 "제2의 인생"을 제조업에서 펼쳐 보자며 K사에 들어갔다.

규모가 크고 이미지도 좋은 회사였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니 문제가 많았다.

부채가 엄청났고 현금흐름은 전혀 없었다.

"큰일났다"고 생각했지만 1년도 채못돼 사표를 낼 명분이 없었다.

그의 결심을 당긴건 보증이었다.

신규대출에 대해 대표이사로서 보증 설 것을 요구받은 그는 "집안에 반대가
심하다"며 사직서를 냈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는 얼마있다 부도를 냈다.

K씨는 돈은 못 벌었지만 잃지는 않았다.

우리 정서상 회사에 대한 충성도 측면에서 볼 때 K씨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더 잘못된건 L씨다.

IMF의 한파가 본격화되고 있는 98년 대한민국의 전문경영인들은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보증"이라는 뇌관을 짊어지고 화약고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비겁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냉정한 결심을 굳혀야 하나.

IMF 이전만 해도 임원들이 보증을 서는 관행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충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전재산을 바쳐 회사를 위해 일하는 임원에게 오너는 후한 점수를 줬다.

보증 때문에 망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올들어 누구도 기업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보증은 전문
경영인들을 벼랑으로 모는 족쇄로 변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웃지못할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할수 없이 보증을 서게 될 경우에 대비해 아내나 자식, 혹은 장인 장모
앞으로 재산을 명의이전하는 일은 다반사다.

아예 재산을 처분해 현금으로 감춰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이미 보증을 선 경우에는 아내와 위장이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모업체 사장은 "정리해고를 당해도 작으나마 몫돈을 챙겨 나갈 수 있는데
우리는 평생 벌어 모은 재산을 토해내고 그것도 모자라 몸으로 떼우는
일까지 있다"고 말했다.

보증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 관행을 없애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코오롱은 이웅열 회장이 신규 대출의 경우 임원들이 보증서지 못하도록
하라고 직접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금융 관행상 이는 확산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 전문경영인들은 대부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보증이라는 폭탄을
짊어지고 일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진정한 의미의 "책임경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기업가정신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험심이나 배짱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떨어지는 낙엽도 밟지 않는다"는 제대 말년의 병사와 같은 보신주의만
남게 된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