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서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약 1백20여회의 대홍수 기록이
남아있다.

홍수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한 것은 19세기말부터로 1885년, 1891년의
낙동강홍수는 그 피해가 극심했다.

그러나 사상 최대의 홍수는 1925년 "을축년 한강 대홍수"였다.

그해 7월11일부터 시작된 비는 이틀동안 황해도 이남지역에 3백~5백mm의
비가 쏟아졌다.

연이어 16일부터 사흘동안 한강과 임진강 유역에 6백50mm나 되는 폭우가
내렸다.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서울이었다.

지금의 동부이촌동 뚝섬 송파 잠실 용산 마포일대는 물바다로 변했다.

전국에서 6백47명이 사망했다.

1만3천여호의 가옥이 유실됐고 4만6천여호가 침수됐다.

유실된 논밭까지 피해액은 1억원이 넘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1년예산의 58%나 되는 규모였다.

우리나라의 홍수는 대체로 7~9월에 주기적으로 태풍이 몰고 오는 호우가
주범이었다.

그리고 강이 범람해 일어났다.

을축년 대홍수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요즘은 별다르다.

강수량의 지역편차가 크다.

국지적으로 단시간내에 무섭도록 비를 쏟아붓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비의 양과 시기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게릴라성"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엊그제 오후부터 어제 오전까지 강화 파주 의정부일대에는 3백~6백mm의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일대가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서울에도 1백77mm의 장대비가 내려 곳곳이 침수됐다.

사망자 실종자 수재민이 속출하고 교통.통신이 두절되는 등 수도권일대가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다.

한밤에 내린 장대비로 잇달아 산사태가 일어나고 마을이 고립돼도 속수무책
인 정부의 재해예방대책은 철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못내 안타까운 것은 경제적 어려움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물난리까지
당해야하는 수재민들의 처지다.

그러나 이런 비는 앞으로 몇차례 더 계속된다는 예보다.

"인재"니 "천재"니를 따지기 앞서 산사태나 하천범람 등으로 더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모두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