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이 진통을 겪고 있다.

소리는 요란한데 별다른 진전이 없다.

정부시책도 갈팡질팡하는 느낌이다.

도대체 기업의 구조조정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리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산업은 저임금과 산업보호라는 두가지 힘으로 커왔다.

이자도 비싸고 땅값도 비쌌지만 저노임때문에 기업이 이익을 내고 수출
경쟁력이 생겼던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도 외국의 경쟁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서
살아가게 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갑자기 고임금시대와 개방시대가 되면서 현재의 위기를
맞게 됐다.

이처럼 우리의 성장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기업들의 체질은
구석구석까지 저임금과 산업보호가 있어야 굴러가도록 굳어져 있다는데
위기의 본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구조조정의 참뜻은 바로 고임금과 개방체제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 체질을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재벌들이 모든 업종에 손대면서 적자기업도 끌어안고 가는, 이른바 다각화
경영은 보호시대의 유물이다.

개방시대에는 세계제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전문화해야 하고 경쟁력없는 기업은 정리해야 한다.

빚으로 크는 경영은 저임금과 보호속에서만 가능하다.

매출액에 대한 이자부담이 경쟁국들은 1~2%인데 올해 우리 기업은 10%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날에는 그 격차를 저노임으로 메웠지만 이제는 메울 방법이 없다.

이것을 메우지 못하면 이제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부채를 줄이라는 것이다.

인력과 조직도 마찬가지다.

지금 기업에는 인력이나 조직에 군살이 많다.

이것은 인건비가 쌀 때, 그리고 군살이 있어도 보호장벽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때 만들어진 체질이다.

이제 이것들을 도려내지 않으면 기업전체가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경영과 소유의 세습, 그리고 경영의 투명성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경영과 소유를 세습하려는 가족경영체제는 농경문화와 보호주의시대의
유물이다.

투명한 경영을 하지않고는 고객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 기업의 구조조정이란 고임금과 개방이라는 새로운 생존환경에 적응하는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이것을 외면해왔다.

빚을 줄이라고, 문어발 경영을 하지 말라고 10년전부터 소리쳤지만 이 핑계
저 핑계대고 오늘까지 외면해 오다가 결국 지금 벼랑에서 떨어지게 된 것
아닌가.

그런데 벼랑에서 떨어지고 나서야 우리나라 기업들은 개혁을 하지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개혁을 할 수있는 힘과 시간이 있을 때는 이를 기피해
오다가 정작 하려고 팔을 걷고 보니 할수 있는 힘도 없고 시간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업구조조정이 헛돌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빚을 줄이려면 이익을 더 내든지 재산을 팔든지 해야 하는데 이익은
커녕 도산에 쫓기고 있고 재산을 팔려해도 사주는 사람이 없다.

결국 외국인에게 파는 길밖에 없는데 반의 반 값도 쳐주지 않고 그나마
사줄 사람도 나서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정책이 중요하다.

정부는 한편에서 기업의 개혁을 다그치도록 확고한 규칙을 세워 적용해야
한다.

예컨대 상호보증.상호출자.불공정 내부거래에 대한 강력한 규제, 기업의
경영가 소유세습단절을 위한 확고한 조치(상속.증여세 강화 등), 빚 많은
기업이 혜택을 보도록 되어있는 세제의 개혁, 투명성을 보장하는 조치
등이다.

그런다음 개혁의 구체적 방법은 기업에 맡겨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기업에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힘과 시간을 주어야
한다.

예컨대 기업의 합병이나 분할, 부실기업 정리, 사업교환, 재무구조개선
등을 위한 기업의 자구노력에 1백%의 조세감면 등 파격적인 시한부조치가
필요하다.

부실금융과 부실기업정리에 필요한 정부지원도 과감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충분한 시중자금공급과 금리인하,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보장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업구조조정은 외국자본이 주도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국내 자본이 주도할 수 있도록 기업에 힘을 주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