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 삼성경제연구소장 >

이 세상에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적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중 경제와 관련이 깊은 것 세가지만 들어보자.

한국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것도 바로 이 세가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CEO(Chief Executive Officer)다.

CEO는 기업의 최고 책임자로서 경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갖고 또 책임을
진다.

일상적인 기업운영은 밑에 맡기고 기업의 방향을 잡고 전략을 짜는 핵심적인
일을 한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포석과 결단이 주임무로 구조조정작업을
늘 해야한다.

그래서 임직원들을 설득하고 효율적 시스템을 만들어 기업을 한 방향으로
끌고가야 한다.

혼자 바쁘다든지, 아랫사람들을 복지부동으로 만들면 실격이다.

때문에 직관 상상력 결단력 설득력이 출중해야 하며 운도 좋아야 한다.

승부를 걸어 성공하면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파면당한다.

그 평가기준은 기업 수익과 시장 주가다.

CEO에 따라 기업의 부침이 좌우되고 그것이 모여 나라 경제가 결정된다.

CEO가 중요한 것은 기업뿐만이 아니다.

국가의 CEO는 대통령이라 볼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관 대학 언론
연구기관 모두가 마찬가지다.

CEO들은 비전과 직관을 갖고 전략을 구상, 결단을 내리는 큰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부가가치가 낮은 일상적 일에 매달려있는 것 같다.

또 세상 여론에 너무 민감하다.

수많은 장들이 있어도 진정한 CEO가 적기 때문에 계속 IMF체제에 어둠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많은 것 같지만 적은 것이 개혁 전문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바람이 일어난다.

그러나 무엇이 개혁이고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잘 아는 개혁 전문가는
드물다.

흔히 전정권과 다르게 하는 것이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개혁의 핵심인 창조적 파괴가 파괴에서 그치고 창조까지 가지못하는
것이다.

개혁의 방향을 위에서 정하면 그 실천은 개혁전문가의 할일이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비전과 이념 추진력 전문가 집단이 필수적인데 우리는
생각과 입만 있고 막상 손발이 되어야 할 프로 전문가가 적은 것이다.

개혁이란 어차피 수술 작업이다.

환부를 최소로 절개해 썩은 부위만 깨끗이 도려내야 하는데 큰칼 들고 사방
째놓고 뒷감당을 못하는 격이다.

개혁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당위론만 외칠게 아니라 왜 개혁을 안하려
하는가, 저항세력을 어떻게 설득하고 대응할 것인가, 개혁을 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서 그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전문가의 일이다.

개혁은 무척 힘들고 두뇌와 끈기가 요구되는 전문가의 작업이다.

정부기구 개편이나 기업.은행 퇴출작업 같은 것이 개혁의 실천 부분이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선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개혁론자는 많아도 개혁 전문가는 드문 것이다.

세번째로 크게 부족한 것이 원로 지도층이다.

이미 대통령을 지낸 분이 네분이나 되고 높고 고귀한 자리를 거친 사람은
매우 많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원로 지도층이 아니다.

품격과 역할에 있어서 그렇다.

원로층이 없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문제다.

지금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큰 방향 제시와 상호 신뢰 강화, 부문간
이해 조정이 매우 긴요하다.

나라의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그 자리가 지금 비어 있다.

지도적 신분에 상응하는 권위와 존경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안팎의 신뢰관계가 무너져 위기상태다.

사회 곳곳에서 균열과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있고 사회.경제 시스템의
붕괴가 심각한 양상이다.

이것은 IMF자금이나 재정적자로 메울 수가 없다.

수입할 수도 없다.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자신감과 신뢰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이야말로
원로 지도층들이 앞장서야 할 몫이다.

CEO와 개혁 전문가 및 원로 지도층은 없는 것 같지만 많아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되어 있으니 문제다.

많은 것 같지만 실은 없는 걸 잘 모르니 더 문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