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가 드문 재앙은 아니다.

지구 반대편인 남미의 페루도 올해초 엄청난 물난리를 겪었다.

일부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페루홍수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 가운데는 그러나 인상깊은 사진 한장이
끼어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어린이를 건져내는 구명조끼 차림의 작달막한
남자.

바로 페루의 최고 지도자 후지모리 대통령이었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벌어졌던 국회의사당 총기난사 사건 당시의
한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범인이 총탄을 갈겨대는 와중에서도 때마침 관광객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은 바로 국회의원들이었다.

초특급 액션영화를 무색케 하는 ''실제상황''이기에 의원들의 ''투신''은
더욱 빛났다.

한국 정치인들도 수해를 맞아 오랜만에 "활동"을 시작했다.

다만 다른 것은 ''현장''이 아니라 ''언론''에서라는 점이다.

그들은 ''몸''대신 ''봉투''를 던지고 있다.

성금을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똑같은 이름이 이 방송 저 신문에 겹치기로 등장하고 있다.

''금일봉''이어서 얼마를 냈는지도 모른다.

''얼굴 내밀기 캠페인''에 다름 아니다.

이름석자 보다는 팔을 걷어 붙인 현장의 모습이 아쉽다.

만일 진흙탕에 직접 발을 들여놓기 싫다면 지금 당장 국회라도 열어
수재민 대책을 논의할 일이다.

국회의원은 수해현장을 배회하면서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
아니라 국회로 돌아가 수해복구를 위한 추경 예산을 놓고 대책을 숙의할
때다.

더욱이 국회에는 수해말고라도 일거리가 산적해 있다.

김혜수 < 국제부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