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의 현판은 조선의 명필 양녕대군의 걸작이다. 남대문의 대자는
어느쪽 획이 더 길까"

30여년전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섣불리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했다가는 무식이 드러나 바보취급을 받곤했다.

아마 어떤 문화재애호가가 남대문의 본 이름이 "숭례문"이라는 것을 젊은이
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고안해낸 멋진 유머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5년(1396) 9월24일 도성 각문의 누각을 완공하고
일일이 이름을 지었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정북은 숙청문, 동북은 홍화문이니 속칭 동소문이라 하고, 정동은 흥인문
이니 속칭 동대문이라 하고, 동남은 광희문이니 속칭 수구문이라 하고,
정남은 숭례문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하고, 소북은 소덕문이니 속칭 서소문
이라 하고, 정서는 돈의문이며 서북은 창의문이라 하였다"

선조들이 이미 6백여년전에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숭례문은 남대문, 흥인문은 동대문으로 불린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뒤 "역사 바로세우기"에 골몰하면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민족의 기를 꺾기 위해 박아놓은 쇠말뚝뽑기와 함께 일제지정 문화재
재정비작업도 벌였다.

국보1호 남대문은 "서울 숭례문"으로, 보물1호 동대문은 "서울 흥인지문"
으로 고쳐놓았다.

그뒤 일부 교과서 지도 등에서 남대문 동대문은 사라졌지만 아무도 남대문
동대문을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해마다 광복절을 전후해 지상에는 일제잔재를 청산해야한다는 독자투고가
다투어 실린다.

그 가운데 서울4대문의 제이름을 찾아주자는 것은 단골 메뉴다.

남대문 동대문은 일제가 처음 쓴 이름이 아니다.

건조초기부터 모두 친숙하게 불러온 이름이다.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에 무조건 고쳐불러야 한다는 단순논리는 현실을
무시한 명분일 뿐이다.

최근 국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표준시를 바꾸자는 주장도 지나치게
명분론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