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적 가치의 재조명 ]]]

최근 크레디트스위스 퍼스트보스턴(CSFB.금융그룹) 주최로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투자 컨퍼런스"회의장.

미국내 대표적인 아시아통으로 꼽히는 리처드 홀브루크 전 미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현 CSFB그룹 부회장)는 소위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간 전 세계를 풍미하던 소위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라는 수사란
무엇인가.

그 뒤에는 명확함을 꺼리는 연기자욱한 스크린, 끼리끼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이중규범, 부패 등이 도사리고 있다"

홀브루크의 주장은 한마디로 "아시아는 더이상 없다"는 것.

또 다른 토론자인 폴 크루그만 미국 MIT대 교수는 홀브루크의 주장을
반박했다.

크루그만은 "정실자본주의"가 현재의 아시아 경제위기를 태동시킨 한
요인이었음을 인정하고 "그러나 어느정도의 연고주의란 불가피하다.

하루아침에 아시아가 스위스로 변할수는 없다"는 요지의 정상참작론을 폈다.

"아시아 경제는 더이상 나빠지지 않는다. 3년안에 회복될 것이며 특히
한국과 태국이 그렇다"고 주장하면서.

이날 토론의 하이라이트는 논객들이 과거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주장을
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그만큼 복잡하고 다각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폴 크루그만 교수는 아시아 경제붐이 한창이던 지난 94년 "아시아 기적은
끝났다"는 비관론을 폈던 학자며, 리처드 홀브루크야말로 과거 10여년동안
누구보다도 아시아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적 가치"는 이제 세계경제학자들간의 거대한 담론
(discourse)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과거 20여년간 이지역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경제성장
에서 유래한다.

아시아 각국은 80년대 이후 연간 7~9%의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경제학자나 금융전문가는 물론 IMF나 세계은행에서도 아시아의 경제기적을
칭송했다.

특히 아시아 진영내에선 경제기적의 비결을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서 찾으려
한 시도들이 있었다.

리콴유(이광요) 전 싱가포르총리가 대표적이다.

리콴유가 강조했던 아시아적 가치는 가족적 유대감, 권위에 대한 복종,
검약정신, 보수주의 등으로 요약된다.

리는 이같은 문화적 토대위에서 아시아만의 독특한 자본주의 모델이
가능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일련의 서구학자들은 바로 이같은 "경제모델론"을 토대로 현재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인이 "아시아적 가치"때문이라고 태도를 바꾸었다.

유교 문화는 정실자본주의, 유능한 관료는 부패한 관치경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비합리주의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미덕"이 현재의 "악덕"으로 돌팔매질 당하는 격이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의 또다른 옹호자 프란시스 후꾸야마교수(미국 조지
메이슨대학)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모델론"이란 리콴유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수상 등이 독재통치
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만들어 낸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후꾸야마는 아시아만의 경제모델이 존재하지 않듯, 아시아적 가치가 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정책의 실패일 뿐 문화적 원인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서구진영의 비판은 보다 직접적이다.

"아시아 각국이 비교적 단일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아시아적 가치의 실체"(제임스 뷰캐넌박사.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뷰캐넌은 "아시아는 합리적 계약관계보다 개인적 친소관계를 중시해왔다"며
"이같은 특징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됐고 마찬가지로 단기간 안에 경제회복이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반론은 아시아적 가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실주의는 물론 아시아 경제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금융부문에 미친 악영향은 특히 컸다.

그러나 이것들이 아시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19세기말 미국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있었고 남미에서도 유사한 배경으로
위기가 발생했다.

부패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다"(도널드 에머슨
위스콘슨대 교수).

즉 문화적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를 경제시스템과 연계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뜻이다.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한국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연고주의, 작동하지 않는 관료주의, 부패, 장막뒤에서의 거래 등등은
국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관행이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경제시스템을 망가뜨린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미지수다.

역으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관행이 성행했던 것은
아닐까.

과거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을 가능케 했던 양대 축, 즉 기업의 차입경영과
관주도의 경제발전방식이 현 상황에서 한계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하지 못한 정부와 기업은 생존조차 불가능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시아적 가치", 나아가 "한국적 가치"의 용도폐기를 주장
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가치엔 언제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이
발현되거나 강조되기 때문"(김중웅 현대경제사회연구소장)이다.

"한국은 IMF관리체제하에서 당분간 서구적 단기대응방식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시아와 한국기업의 강점이었던 장기비전에 의한 기업경영 및
경제발전방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영국 런던비즈니스 스쿨 던솔교수)는
주장도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남겨진 과제는 아시아적 가치에 내재된 순기능을 살려 한국의 경제
개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는 곧 뒤틀려 있거나, 아예 없는 시스템을 세워 작동시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점에서 "자본주의는 실제 서구사회의 문화나 가치와 큰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엔 그저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있을 뿐이다. 법의 지배나 공공의
이익을 존중하는 정신 등은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일뿐 서구 고유의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는 폴 크루그만 교수의 주장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
이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