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 한국은행 싱가포르사무소장 >

인도네시아 사태가 다시 심상치 않다.

비록 와전된 것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인도네시아는 지난 11일 "디폴트
(Default.채무불이행)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사실은 디폴트가 아니라 리스케줄링(Rescheduling.채무조정)을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국가채무를 제때 갚지 못했다는
사실은 국제사회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비단 채무불이행 문제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내연에 휩싸여 있다.

오는 17일을 전후해서는 전국적으로 대규모 집회가 다시 있을 거라고
한다.

지난 5월 소요사태로 어려움을 겪었던 외국인들은 이 기간을 피해
자카르타를 빠져나가려고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문제는 이같은 사태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인도네시아 통계청은 최근 지난 2.4분기중 경제성장률은 무려 16.45%
감소했다고 밝혔다.

연간으론 13.6%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의 전망은 정부발표보다 더 가혹하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올해 적어도 25%이상 뒷걸음질 칠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가용노동인구 9천만명의 22%인 2천만여명이 실업자로 전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도 80%이상 폭등할 것이란게 일반적이다.

이같은 위기상황을 돌파하려면 다른 무엇보다 외국인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조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네시아 경제의 핵심인 화교자본의 경우가 우선 그렇다.

지난 5월 대규모 폭동때 집을 약탈당했던 인도네시아 최대재벌인
살림그룹 림시오리영(Liem Sioe Liong)은 아직도 싱가포르에 대피중이다.

이미 많은 외화와 함께 해외로 탈출한 화교들도 여전히 귀국을 망설이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위해 중앙은행은 환율안정을 목표로 1개월기준 연60%의
고금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루피아화는 달러당 1만3천루피아수준까지 하락했다.

외국투자자들도 중단된 투자를 재개할 움직임이 없다.

외채문제도 마찬가지다.

민간외채협상이 타결됐다고는 하지만 기본상환계획이 3년거치 5년
분할상환조건이다.

많은 기업들이 지난 1월27일 외채의 잠정적 동결조치이후 이미 원리금
상환을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도덕적해이(모랄 해저드)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의 디폴트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제부터 6백여억달러에 달하는 국가채무 조정의 줄다리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국가채무를 제때 갚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사회에
인도네시아 상황의 심각함을 다시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