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블록버스터(흥행영화)를 표방한 "퇴마록"이 주말
개봉된다.

흥행영화임을 내세운 만큼 이색적인 소재와 화려한 연기진,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까지 오락적 요소를 고루 갖췄다.

"퇴마록"은 아마추어작가 이우혁이 컴퓨터통신에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악령을 내쫓는다는 퇴마사들의 활약이 큰 줄거리다.

영화는 오대양사건을 연상시키는 사교의 집단자살현장에서 시작된다.

핏빛 이미지가 짙게 깔린 광란의 현장에 스와트(기동타격대)요원이
투입되고 이들이 한 아기를 구해내는 과정이 침묵속에서 전개된다.

20년후 악령은 성인으로 자라난 당시의 아기 승희(추상미)의 몸을 통해
부활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사교를 배신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살해당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엑소시즘으로 교회에서 파문당한 박신부(안성기)와 신비의 검 월향을
갖고 악령을 쫓아내는 현암(신현준), 주술에 능한 꼬마 준후(오현철) 등은
승희를 격리시킨 채 악령과 싸움을 벌인다.

메가폰을 잡은 박광춘 감독은 뉴욕대 출신으로 "은행나무침대"의 조감독을
했다.

그는 유명소설을 원작으로 할 경우 자칫 상황설명에 치우치기 쉬운 단점을
극복하고 하나의 에피소드를 간결하게 풀어내 탄탄한 오락영화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빛의 변화와 묵직한 입자감이 느껴지는 화면에 카메라의 각도까지
세심하게 신경쓰는 성의도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컴퓨터그래픽이다.

준후와 게임기속의 로봇이 벌이는 격투기, 납골당을 찾아간 박신부와
악령의 대결장면 등은 할리우드영화와 견주어봐도 손색없는 디지털영상을
자랑한다.

이 점에서 "퇴마록"은 재주있는 신인감독의 탄생과 함께 국내에서도 SF오락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연출력이 축적됐음을 보여준다.

다만 주인공이 4명이나 돼 소설을 읽지 못한 영화팬이라면 다소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흠으로 지적됐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중간중간 호흡이 늘어지는 점도 옥에 티로 남는다는
평이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