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 서울대 교수. 경제학 joonklee@plaza.snu.ac.kr >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지만 교육의 현실은
아직도 암담하기 짝이 없다.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는 호언장담을 너무나 많이 들어온 나머지 이제는 그
말을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렇지만 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차분한
검토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이러니 늘상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고 그 때마다 공연히 혼란만 더 커질
따름이다.

지난날의 교육개혁 작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데는 한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교육개혁을 자기 정부의 치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망이 너무 강했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문제점 투성이인 교육이 혁명적 조치 한두가지로 바로잡혀질리 없는데도,
자신의 임기동안 일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서두르다 실패로
끝나는 일이 거듭되었다.

교육개혁이 영속적인 효과를 가지려면 정부가 바뀐 후에도 새 정부가 이를
차질없이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을 포함한 사회 각계각층의 광범한 참여는 개혁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 된다.

이 정부의 치적을 쌓는다는 편협한 생각에서 비판세력을 배제한 채 진행
되는 개혁작업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어느 당이 집권하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와 관계없이 추진되는 거국적인
사업을 벌여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 작업도 바로 이 전제조건을 어느
정도로 충족시키는지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릴 것이다.

예컨대 2002년에 교육의 새 틀이 완성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뒤에 들어선 정부가 휴지통 속에 넣어 버린다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지금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그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대비를 해두고 있는지 묻고 싶다.

만약 이 정부가 임기 안에 완성된 작품을 내놓겠다는 자세로 교육개혁을
추진한다면 또 한번의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조급한 마음가짐으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광범하게 수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 작업도 너무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개혁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쁘다고 해서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제기된 서울대학교의 구조조정 문제 처리과정을 보면 위험스러울
정도로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해 구조조정안이 작성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 단
한달이었다.

아마 대학의 한 학과를 개혁하는 데도 그보다 몇배나 더 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무슨 이유를 대든 서울대학교 같은 거대한 조직의 구조조정을 그 짧은 시간
내에 끝내려 든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서둘러 만든 구조조정안이 제대로 된 것일 리 만무하다.

아직도 논의가 분분한 소위 2.4제 전문대학원이라는 기형아가 바로 그
무지스런 졸속의 산물이다.

학문의 속성상 몇개 분야를 전문대학원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 이것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해당 대학들이 반발하자 학부 2년을
마친 학생을 대학원생으로 만들어 주자는 엉뚱한 발상이 나왔던 것이다.

무엇이 급하다고 그리 서두르다 다리 둘에 팔이 넷인 기형아를 만들어냈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구조조정의 시늉만 내느니 아예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들어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번 교육개혁 작업만은 성공으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설사 몇십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해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참을성있게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것은 마치 실험이라도 하듯 교육제도를 이리저리
뜯어고쳐 혼란만 가중시키는 경우다.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이렇게 정도를 걷는 것만이 지난 날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