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자 < 서울대 교수. 국사학 >

취임 한달이 된 필리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가
이토록 어려운 줄 몰랐다. 이런줄 알았더라면 마음을 고쳐먹었을 것"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한다.

우리 전통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심경을 토로한 왕이 있었다.

18세기 조선문화의 전성시대에 그 문화를 이끌어간 영주인 정조대왕(재위:
1776~1800)이다.

그는 신하들에게 "나는 왕노릇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즉위후 하루가
지나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살얼음
밟듯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회고했다.

대통령이든, 왕이든 최고 통치자의 부담이 얼마나 크고 힘겨운지 알만하다.

최근 그렇게도 어려운 대통령직을 한때 수행했던 전직 대통령들이 현직
대통령의 초대로 한자리에 모여 국난극복을 위해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그 자리에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한다.

국민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랴만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방법이 문제다.

지금 정부는 IMF라는 지각변동의 복병을 만나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에
나섰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작업은 현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인식돼 역대 정권이 부르짖은 어떤 개혁보다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이상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를 회복시켜 옛날처럼 잘 살 수 있다는 논리로는 더이상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잘 살아 보세"운동은 한번으로 족하다.

일제와 6.25전란으로 인한 허기증은 잘 살아보겠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 동안 국민들은 그 경제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명료하게
깨닫게 되었다.

물질적 풍요가 주는 안락함에 상응하는 부패의 혼란, 인간답게 사는 가치의
상실 등에 대해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다섯번이나 강산이 변하는 세월을 살면서 과연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대한민국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망명정부로 출발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정통성을 대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이라는 국호는 1897년 성립된 대한제국에서
유래했다.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이 아니라 국민이 주체가 되는 민국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대한제국은 1894년의 갑오경장과 1895년 을미개혁의 시행착오 끝에 조선의
주체성과 정통성을 제고하면서 유림이 지지기반이 되어 성립했다.

세계질서 재편기에 처해 국가의 강력한 구심점으로서 황제의 존재를
설정했던 것이다.

그 이전 조선이야말로 동아시아의 문화중심국이라는 조선후기 사회의
자부심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대한제국은 성립될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성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반세기가 지났건만
우리에게는 바람직한 국가상이 없다.

오로지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구호만 무성할 뿐 왜 무엇을 위하여
인내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비전이 없다.

실직자들에게는 일자리보다 일할 의욕이 없어지는 것이 더욱 문제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제2의 건국은 새로운 건국이념과 바람직한 국가상을 세워야 가능하다.

역사상 우리 민족은 민족 이기주의로 오해되지 않는 선에서 민족 정체성을
다져왔다.

타민족이나 국가를 침해하지 않는 도덕성을 세우면서 주체적 자아인식을
통해 민족문화를 키우고 지켜온 우수한 전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 주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국가의 방향성을 세우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그것은 이 어두운 시대의 길잡이가 될 것이며 국민 개개인에게 희망의
등불이 돼 난국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