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적 경제발전모델 재정립 ]]

"21세기 한국경제가 지향해야할 새로운 모델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제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할 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병행 발전하는 나라"를
그 해답으로 제시했다.

소위 "DJ노믹스"다.

혹자는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그것만이 한국경제가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 식"에 연연하는 눈치다.

애국심을 바탕으로 공동이익을 우선하는 "한국적 가치"를 그렇게 쉽게
내동댕이 쳐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사실 미래의 경제발전 모델을 정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방향이나 모델을 설정하는 일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국가 생존전략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미래 세계변화 전망을 토대로 치열한
토론과 오랜 연구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서둘러 한국경제의 "새 설계도"를 그리지 않으면
안될 때를 맞았다.

무비전은 시행착오와 방황의 시발점일 뿐이다.

어쨌든 백가쟁명의 주장 속에서 한국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찾는 일은
일단 여러 대안중 공통분모를 솎아내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그 조건들을 채우고 보완해 나가다 보면 필요조건이 충분조건으로 근접할
것이다.

결국 "필요충분 조건"에 도달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경제라는 "새 집"의 필요조건중 역시 기둥은 "시장의
재구축"이다.

이에대한 이견은 거의 없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발은 모든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장경제를 제대로 구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돈부시 미국 MIT대 석좌교수)

몰리터 OECD경제개발검토위원장도 "시장을 경쟁적으로 만드는 게
한국경제가 지향할 최선의 방책이다"이라고 조언했다.

물론 한국이 지금까지 시장경제를 안한 것은 아니다.

건국이후 우리도 시장경제를 표방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시장은 진정한 시장이 아니었다.

정부가 기업과 금융을 어깨동무 한채 발 맞춰 달려왔던 지난 50년 동안은
시장이 시장일 수 없었다.

지금의 IMF위기도 거기서 비롯됐다.

시장을 시장답게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가 변해야 한다.

한국의 시장경제를 망친 가장 큰 책임은 다름아닌 정부에 있는 탓이다.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돼야 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또 시장에서 경제주체들이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룰을 만드는 데 정부의 역할은
한정돼야 한다.

지나친 정부 개입은 "시장실패"보다 더 무서운 "정부실패"를 부른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일본의 경제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씨는 "관리지향적 정부는 이제
필요없다.

관료들은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처럼 심판 역할만 맡으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부가 이렇게 시장경쟁의 규칙을 제공하는 역할만 한다면 기업과 금융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여기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기업.

"기업들은 이젠 페어 플레이를 해야 한다.

정치권이나 정부에 기대어 살아남을 생각을 해선 안된다.

대마불사의 신화를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공정한 게임 룰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기업가 정신만이 그들의 믿음이어야
한다"(유승민 KDI연구위원).

물론 여기서 "재벌의 투명성 제고는 피할 수 없는 선택"(피터 서더랜드
골드만삭스 국제부문회장)이기도 하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이 정부통제에서 벗어나 기업자금 조달통로이자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OECD쉘톤 사무차장).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이제 비용 절감과 예금자 수익 증대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정부나 정치권의 청탁을 받아 부실대출을 해주고 그 대가로 생존을
보장받는 시대는 지났다"(휴패트릭 미국 콜롬비아대 교수) 변화의 대열에서
국민도 예외일 수 없다.

"일반국민은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이자 제품의 최종
소비자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기업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오마에 겐이치 일본 경영컨설턴트)

"자국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하는 국수주의가 애국심은 아니다.

미국기업이든, 일본기업이든 한국에 들어와 고용을 창출하고 상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남기는 기업은 모두 우리 기업이란 생각을 가져야
한다"(김대중 대통령).

이렇게 시장경쟁의 여건만 조성하는 정부와 투명한 기업, 건전한 금융,
합리적인 국민이 제 자리를 찾아 간다면 과연 한국경제의 새 틀은 완성되는
것일까.

여기서 절대 빠뜨려선 안되는 곳이 있다.

경제학 교과서엔 나오지 않지만 한국경제에서 무시못할 변수인 정치가
그것이다.

"깨끗한 정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경 유착의 진짜 고리를 끊을 수도
없고 시장경제는 있으나 마나다.

기업 금융과 정치권력 사이의 "불륜"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게 급선무다.

그동안 한국경제에서 적지 않은 문제의 근원은 바로 정치권력이었다"
(유승민 KDI연구위원).

영국 골드만삭스의 서덜랜드 국제부문 회장도 "정치인들이 정치적
자살행위를 할 준비가 돼 있어야만 한국의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광의의 정부, 즉 정치권력 관료 사법부의 제자리 찾기야
말로 새로운 한국경제 모델정립의 대들보가 돼야 한다.

어쩌면 한국에선 이게 가장 중요할 수 도 있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정보화 네트워크화 지식산업화로 하나의 시장이
될 게 분명하다.

무역이건 금융이건 국제경제에서 국경이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다.

투명하게 시장이 돌아가지 않는 나라엔 자본이 들어갈리 만무하다.

척박하고 좁은 국토에 인구 7천만명(북한 2천5백만명 포함)이 선진 기술도
없이 지구촌의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도리가 없다.

시장경쟁 원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치권 정부 기업 금융 국민이
너나 할것 없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헤겔은 한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 "시대의 의지"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향후 반세기 시대의지는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5.끝)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