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가격인하경쟁으로 떠들썩하다.

월마트의 저가공세로 촉발된 인하경쟁이 할인점들의 다자간 힘겨루기로
확대되면서 연일 화제가 쏟아지고 있다.

자존심싸움까지 겹치자 일부상품은 하루가 멀다하고 값이 떨어지고 있다.

매장은 가격인하소식을 듣고 몰려든 고객들로 열기가 가득하다.

상품이 품절돼 헛걸음을 한 소비자들로부터는 불만과 항의도 잇따르고 있다.

얘깃거리도 적지 않았지만 어쨌든 소비자들은 알뜰쇼핑의 소중한 기회를
맞게 된 셈이다.

경제난 속에서 고물가와 씨름하는 소비자들에게 이번 경쟁은 희소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속사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마냥 반길수만은 없는 대목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이번의 가격인하는 할인점들간의 지나친 감정대결이 원인으로 작용한
인상이 짙다는 점이다.

한국시장진출 초기부터 과감한 저가전략을 펼치려는 월마트와 이에 정면
으로 맞선 국내업체들의 오기가 맞붙은 결과다.

할인점들이 월마트의 가격인하소식을 접한 직후 황급히 회의를 갖고
부랴부랴 판매가를 조정했다는 것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자연 인하대상 품목의 선정과 상품확보에도 차질이 생겼을 수밖에 없다.

찾는 물건이 다 팔렸거나 판매수량을 한정하는 바람에 상당수 소비자들이
허탕을 친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할인점들의 가격인하는 또 납품업체들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은 일방통행식
조치였다는데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유통업체들이 상품가격을 내리려면 제조업체와의 협의하에 납품가격을
깎거나 자신의 판매마진을 희생시키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할인점들은 이번의 가격인하과정에서 납품업체들의 사정을 고려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나친 출혈판매로 납품업체들이 거래를 끊겠다거나 납품가인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양질의 상품을 값싸게 파는 것은 유통업체들의 과제다.

이런 점에서 할인점들은 힘겨운 살림살이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소중한
쇼핑공간이다.

그러나 유통업은 제종버체를 떠나 존립할 수 없다.

팔 상품이 없는 매장은 빈 창고에 불과할 뿐이다.

일본굴지의 유통그룹 이토요카도는 상품개발 과정에서부터 납품업체를
참가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납품업체와의 대화와 협의를 통해 좋은 상품을 처음부터 값싸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사원이 자기회사의 상품을 진정으로 사고 싶을 정도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이회사 이토 마사토시 회장의 상품, 가격철학이다.

월마트의 창업자 고 샘 월튼회장 역시 납품업체와의 굳은 신뢰, 협조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제조업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85년부터 근 5년간 미국상품
사주기(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밀고 나갔었다.

유통, 제조업체의 상호이해와 협조가 유통업 발전과 소비자들의 이익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상품의 가격결정권이 유통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이지만 유통업의 디딤돌은
제조업이다.

참된 의미의 가격혁명은 제조업체들이 값싸고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낼때
시작된다.

제조부문의 한계를 감안치 않은 유통업체만의 가격경쟁은 상품확보 등
여러 측면에서 벽에 부딪칠수 밖에 없다.

"유통업체 직원은 새와 곤충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하늘을 날면서도
쉼없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새와 목표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곤충의 습성을
가져야 진정한 저가양질의 상품을 찾아낼수 있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이 새겨들을만한 이토 회장의 말이다.

< yangs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