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침체에 빠져있는 일본경제를 살릴 수 있는 비방은 과연 무엇일까.

아시아의 위기를 예언한 미국 MIT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인플레이션
이야말로 유동성 함정에 빠진 일본경제를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처방"
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구조개혁이나 재정확대만으로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일본경제를
흔들어 깨울수 없다고 지적한다.

인플레이션 정책으로 실질금리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려 소비와 투자를
유발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라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 자매지인 "디스이즈요미우리" 9월호에 실린 폴 크루그먼
교수의 기고내용을 간추린다.

< 정리=김경식 도쿄특파원 kimks@dc4.so-net.ne.j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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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기불황의 원인으로 거액의 불량채권, 서비스부문의 규제, 인구의
고령화 등이 꼽히고 있다.

따라서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감세와 금융제도의 개혁 등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경제 문제의 본질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보다 이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 단기 명목금리가 거의 제로로 떨어져 있음에도 총수요가 제품
공급 능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하루짜리 콜금리는 현재 0.37%선으로 떨어져 있다.

일본경제는 한마디로 생산능력을 밑도는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말이다.

일본이 재할인율을 현재보다 더 인하해 금리를 마이너스로 만들 수는 없다.

금리를 조정해 경기를 부양하는 소위 금융정책의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경제학적 용어가 바로 "유동성 함정"이다.

일본은 지금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있다.

일본은 왜 유동성함정에 빠지고 말았는가.

미래의 생산능력이 현재보다 낮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질수 있다.

일본의 생산능력이 현재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할수 있는 첫번째
이유는 인구통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출생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해외로부터의 이민도 없다.

이는 앞으로 수십년동안 노동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성의 향상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잠재적인 성장율은 향후 15~20년에
걸쳐 저하될 것이다.

인구의 연령구성이 변하기 때문에 노동력인구는 총인구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할 것이다.

장래 한사람당 생산능력이 현재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일본은 유동성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조개혁 재정확대 금융정책 등 3가지 분야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첫번째 구조개혁을 꼽을 수 있다.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금융시스템개혁, 서비스부문의 규제완화, 기업회계제도 개혁 등이 단행
되어야 한다.

이같은 조치는 마이크로면에서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개혁이 경제전체의 수요를 확대 창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급진적인 구조개혁을 실시하더라도 일본경제가 유동성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재정정책이다.

재정정책은 유동성함정에 빠져 있을 때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게
일반론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정정책이 현재의 일본경제에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될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일본은 공공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회복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정책은 공급측면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를 강제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지출이라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지출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

세번째는 금융정책이다.

명목금리가 제로수준으로 하락,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통화
공급량을 늘리면 물가수준이 오른다.

명목금리로부터 물가상승율을 뺀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로 된다.

마이너스 금리라면 예금할때 손실이 생긴다.

그 결과 소비나 투자쪽이 이득을 본다.

모든 사람들이 이같이 생각하게 되면 돈을 쓰게 될 것이다.

일시적인 화폐공급 확대가 아니라 영속적인 확대책이 더욱 효과적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일본은행은 금융정책방향을 수정, 화폐공급을 늘리는 경우에도 이것이
영구적인지 아니면 일시적인지를 공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참가자들은 일은의 입장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시장참가자들은 중앙은행의 장기적 정책목표가 물가안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일본의 금융정책은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금융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본은행이 물가안정에 대해
책임이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

"일본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한다"는 방침을 선언, 시장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에 정말로 필요한 "마이너스 실질금리"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통화공급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적다.

일본의 과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이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율의 장기적인 목표치라도 공표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할 것임을 선언하는게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일본인들은 저축을 중단하고 투자를 늘려갈 것이다.

따라서 수요도 확대될 것이다.

현재 일본의 경제위기는 세계경제사에서 유래없는 성과로부터 발생했다.

고속성장에 만족해오다 결국 화를 자초하고 만 결과가 된 것이다.

인플레이션 정책의 최대 문제는 엔화약세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엔화약세가 지속될 경우 중국 위안(원)화의 평가절하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

이는 또 세계적인 통화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실제로 자본의 단기적인 이동은 아주 불안정하다.

런던에 있는 29세의 야심만만한 외환딜러가 "이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2~3시간부터 하루사이에 실제 현실도 그의 생각대로 되어 버린다.

그러나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펀드멘털(경제의 기초적 여건)의
문제다.

엔화가 30% 하락하고 아시아 통화는 실세 환율이 크게 변하지 않은채
10~15% 절하됐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상황에서 대파멸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아시아통화의 경우 소폭절하로 충분히 수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위안화의 평가절하가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이다.

많은 사람들은 위안화 평가절하의 영향이 엄청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왜 그렇게만 생각해야 하는가.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다.

외환딜러와 중국의 상황에 끌려다니면서 정책다운 정책을 실시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눈치만 볼 것인가.

중국시장 등은 거래규모로 볼때 아직 일본경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