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토리엄(외채 지불유예) 선언과 루블화 평가절하를 계기로 러시아가
경제혼란과 정치불안의 급류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한 정면승부였지만 오히려 파국적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국면이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17일 주가가 4.6%나 폭락한데 이어 18일에도 하락세를
지속했다.

금융시장은 콜거래가 끊기는 등 마비상태다.

통화가치 하락으로 물가상승이 불가피하고 금유익관의 연쇄도산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의회(듀마)가 오는 20일 옐친 탄핵을 위한 긴급
위원회를 다시 열기로 하는등 정치불안도 고조되고 있다.

17일 오후 모스크바에 도착한 국제통화기금(IMF)대표단(단장 존 오드링
스미어)은 곧바로 저녁부터 추바이스 러시아측 협상단장과 구제금융
추가지원 문제와 경제개혁 방안에 대한 재협상에 착수했다.

<>러시아 개혁의 향방=러시아 정부의 긴급조치는 IMF및 서방 선진국들과
긴밀한 협의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정부의 고위관계자는 "IMF로부터 러시아의 조치와 관련된 사전
브리핑을 받았다"고 말해 러시아의 이번 조치가 이미 선진7개국(G7)과
상당한 협의를 거쳤음을 시사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과 IMF등이 최소한 1백억달러에서 최대 1백50억달러를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주목되고
있다.

또 올해초 인도네시아가 추진했다가 포기한 통화보드제(일명 페그제:
준 고정환율제)를 러시아에 적용하는 타협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외국지원금을 밑천으로 환율을 방어하고 난립한 금융기관들을 옥석을
가려 도태시키는 구조조정의 막이 오르는 셈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2개 은행을 우량은행으로 선정해 별도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발표해 러시아 금융기관의 연쇄적인 파산은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시장 동향=러시아 정부및 기업이 발행한 유러달러 표시채권 가격은
30%나 급락했다.

또 1천5백개의 러시아 은행중 1천2백개 이상이 부도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있다.

예금인출 소동이 이틀째 계속됐고 러시아은행들에 대한 외국은행들의
크레딧 라인이 18일 일제히 중단됐다.

암 달러시장에서는 달러당 8루블에 거래되고 있다.

<>정치불안 고조=러시아와 IMF가 경제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의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의회는 겐나디 주가노프가 이끄는 공산당에
장악돼 있다.

반대파들은 9월초에 열기로 한 국회일정을 앞당겨 오는 20일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고 옐친에 대한 탄핵 주장을 제기하는등 즉각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여기에 금융시장의 혼란등이 맞물리면 옐친 퇴진 요구는 더욱 세를 얻어
갈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매커리 미국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는 분명히 인도네시아와는
다르다"며 옐친이 수하르토의 전력을 밟게 될 가능성을 차단하는등 아직은
옐친 지지를 분명히 하고있다.

하지만 러시아 내부에서의 갈등이 고조되면 옐친의 지도력은 치명상을
당할 수 밖에 없다.

< 정규재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