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익명이란 이름 .. 정진규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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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께서 이순에 쓰신 다음과 같은 한시가 있다.
"시상태감반탈인/홍안감육구호진/자설어배출세속/가련성병실청춘.
시에 빠져 살도 내리고 입맛도 잃을 정도이며 세속을 뛰어넘고 있다고 뽐을
내지만 가련하다.
이름 하나 드날리려고 청춘마저 다 잃었구나, 병이 들었구나"
대략 이런 내용인데, "자소시벽"이라 제한 이 시에서 한평생을 "시상"
(시를 앓는 병)에 걸릴 정도로 시에 매달리고서도 그것이 실은 이름 석자를
드날리려는 "병"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는 선생의 겸허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이다.
그렇다.
이 이름 석자가 늘 문제다.
양명어후세 효지시야라는 말씀이 있어서 인지 여기저기 되지도 않은 이름
석자를 어거지로 들이밀고 있는 진풍경을 만나게 될때가 적지 않다.
무슨 예식장, 무슨 기념회장, 또는 장례식장 같은 곳엘 가 보면 축하나
추모의 진정한 뜻은 어디로 가 버리고 보낸 사람의 이름석자가 더 크게
돌출되어 있는 화려한 화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어디 그것 뿐인가.
어제 오늘 또다른 진풍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상처를 입은 수재민들을 돕겠다는 진정한 뜻보다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세우려고 알량한 돈봉투를 언론사 곳곳에 쪼개서 뿌리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고 보면 이건 정말 부끄럽고 부끄럽다.
김춘수의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그런 "꽃"으로서의 "이름"이 진정한 이름일 터이다.
순수한 화해와 사랑으로서의 존재의 태어남, 그런 이름.
아니, 가끔씩 그런 분이 이세상에 있는 걸 보아왔지만 이번 수재민들을
위해 평생 모은 자신의 통장 여러 개를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선뜻
내 놓았다는 한 할머니의 그 "익명"이 진정한 "이름"이 아니겠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0일자 ).
"시상태감반탈인/홍안감육구호진/자설어배출세속/가련성병실청춘.
시에 빠져 살도 내리고 입맛도 잃을 정도이며 세속을 뛰어넘고 있다고 뽐을
내지만 가련하다.
이름 하나 드날리려고 청춘마저 다 잃었구나, 병이 들었구나"
대략 이런 내용인데, "자소시벽"이라 제한 이 시에서 한평생을 "시상"
(시를 앓는 병)에 걸릴 정도로 시에 매달리고서도 그것이 실은 이름 석자를
드날리려는 "병"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는 선생의 겸허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이다.
그렇다.
이 이름 석자가 늘 문제다.
양명어후세 효지시야라는 말씀이 있어서 인지 여기저기 되지도 않은 이름
석자를 어거지로 들이밀고 있는 진풍경을 만나게 될때가 적지 않다.
무슨 예식장, 무슨 기념회장, 또는 장례식장 같은 곳엘 가 보면 축하나
추모의 진정한 뜻은 어디로 가 버리고 보낸 사람의 이름석자가 더 크게
돌출되어 있는 화려한 화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어디 그것 뿐인가.
어제 오늘 또다른 진풍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상처를 입은 수재민들을 돕겠다는 진정한 뜻보다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세우려고 알량한 돈봉투를 언론사 곳곳에 쪼개서 뿌리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고 보면 이건 정말 부끄럽고 부끄럽다.
김춘수의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그런 "꽃"으로서의 "이름"이 진정한 이름일 터이다.
순수한 화해와 사랑으로서의 존재의 태어남, 그런 이름.
아니, 가끔씩 그런 분이 이세상에 있는 걸 보아왔지만 이번 수재민들을
위해 평생 모은 자신의 통장 여러 개를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선뜻
내 놓았다는 한 할머니의 그 "익명"이 진정한 "이름"이 아니겠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