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위험관리란 개념을 잊고 살아왔다.

"설마가 사람 죽인다"면서도 "설마"에 기대어 살아왔다.

그러나 IMF사태이후 많은 국민들이 위험의 개념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예금자들은 이제 어느 은행이 안전한가를 따지고, 어느 아파트를
분양받아야 건설중에 부도가 나지 않는가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위험과 안전, 고수익과 저수익에 대해 심각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적 성장이 계속되었던 지난 30년간 우리는 "위험"에 대한 걱정을 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이 온 나라가 위험불감증이란 중병에 걸려, 설마하면서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참사를 겪었고 IMF라는 최악의
경제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같은 위험불감증은 어디에서 왔는가.

개인이나 기업의 가치체계의 특성탓도 있겠지만 경제사회의 발전과정을
주도해왔던 정부의 관행에서 많은 부문이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산업부문에서 보면 정부는 규제라는 명목하에 산업정책을 추진하면서
보호막 역할을 해주었다.

산업기반 자체가 취약했던 경제성장 초기에는 이러한 정부의 보호막이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으나 결과적으로 기업의 체질을 기회주의와
위험불감증쪽으로 기울어지게 했다.

정부의 충실한 보호자 역할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기업은 망할 수 있다"는 전직 고위관료의 발언 한마디에 해외자본이
무더기로 이탈할 만큼 국가경제가 허약해졌다.

요즘 비로 인한 인명이나 재산피해가 유난히 많은 것도 따지고 보면
"설마"라는 위험불감증의 결과라 할수 있다.

IMF시대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서서히 위험불감증에서 벗어나 위험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만큼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든 국가경영이나 기업경영의 중심은 급변하는 환경속에서 예상되는
위험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급변하는 상황에서 야기되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역할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정부 자신이 불확실성에 대한 직접적인 방패나 보호막을 제공하기 보다는
불확실성 자체를 줄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책의 일관성 결여나 부처간 의견 상충으로 국민생활이나
기업경영에 미칠 불확실성이 증폭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근 바닥이 보이지 않게 추락하고 있는 개인소비와 기업투자는 개인소득의
감소나 투자여력의 부족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겠으나 보다 민감해진 "위험"
의식과 내일을 알수 없는 극도의 불확실성이 주는 심리적위축에서 더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같은 시기에 국민생활과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정부나
언론이 과연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의도적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불확실성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정부는 정책 추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노출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금융산업 개혁, 대기업간 빅딜, 공기업 민영화 등과 관련한
일련의 구조조정에서 직간접으로 드러난 정부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관련
부처간의 입장상충은 그렇지않아도 팽배한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경제개혁 작업이 시장기능에 맡겨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엔 원론적으로 공감하지만,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보다 확고한 입장에서 많은 검토를 거쳐 설정한 개혁작업은 과감하고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것이다.

특정 이해집단의 반발이 있으면 정책을 수정하고 이는 또다른 이해집단의
반발을 불러들이는 식으로 정책이 변질되어간다면 불확실성의 증대라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없다.

정부는 주요 개혁작업을 추진함에 있어 "불확실성의 축소"라는 명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곧 IMF의 조기 졸업과 개혁을 성공적으로 앞당길 수 있는
열쇠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