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저렇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채 어둠 속을 영원히 걸어갈
수는 없는 법이야. 길을 밝혀주지 않으면 안되겠어. 저들에게는 바로
불빛이 필요해"

20세기 독일문단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

그의 소설 "촛대의 전설"(이동준역 자작나무)이 번역돼 나왔다.

그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 "마리 앙투아네트"등 역사에세이와 전기물로
유명해졌지만 처음에는 시인으로 출발했다.

스무살 때 시집 "은빛 현"을 처음 냈고 산문으로 영역을 옮긴 뒤에도
그의 시적 감수성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섬세한 감정묘사와 독특한 문체로 누구보다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38년 조국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강제합병되자 외국으로 망명한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42년 부인과 동반자살할 때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역작을 남겼다.

이 소설에서는 유태인들의 파란만장한 방랑사를 촛대 한자루로
풀어간다.

모세의 촛대 "메노라"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예루살렘의 기적을 이룩한
유태 민족의 정신적 기둥.

5세기 중엽 반달족의 습격으로 이 촛대를 잃은 유태인들은 이 "성물"의
이동경로를 끊임없이 추적한다.

어린 벤야민도 그중 하나다.

촛대를 되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벤야민은 늘그막에 금 세공사의 도움으로
모조 촛대를 만든다.

우여곡절끝에 이를 진품과 바꿔치기한 그는 "민족의 빛"을 영원한 안식처로
옮긴 뒤 숨을 거둔다.

작가는 이민족의 침략과 약탈로 떠돌이 신세가 된 촛대의 운명을 통해
오랜 세월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저력을 불꽃처럼 비춘다.

어려운 시기의 국내 독자들에게 인내와 희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