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단국대 교수 / 경제학>

현대자동차 사태가 당.정의 사력을 다한 중재에 힘입어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수습됐다.

한편에서는 현대자동차 노사가 협상을 통해 정리해고를 도입함으로써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 협상과정이 남긴 깊은 상처도 만만치 않다.

특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외국 투자자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에
현대자동차 사태의 해법이 경색돼가는 국제자본시장에서 외국자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의욕을 오히려 저하시킨 결과를 초래한 것은 뼈아픈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 사태와 같은 사례가 또다시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부는 먼저 정리해고제를 비롯한 고용조정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국내보다 외국투자자들이 클 것이고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정부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업에 대해서 구조조정은 강조하면서 정리해고를 자제할 것을
강권한다든지, 대외적으로는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홍보하면서 대내적으로
정리해고제의 시행을 어렵게 만든다든지 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메시지는
혼란을 가중시킨다.

외국투자자 사용자 노동자 모두 정책에 실망하고 그 부담은 결국 정부에
다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정책의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 공정한 법 적용자와 엄정한 법
집행자로서 역할을 다함으로써 협상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외국투자자들은 우리나라가 정리해고제의 도입이 어려운데 따른 충격보다
협상과정에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노사는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협상자세를 버려야 한다.

정리해고 문제가 협상의 산물이라고 할 때 노사뿐아니라 정부는 상대방의
가치관이나 철학을 협상하기 보다는 정리해고 문제 그 자체를 협상했어야
한다.

노동조합은 정리해고제에 반대한다면 힘으로 밀어붙이기에 앞서 정리해고가
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었는지 살펴보았어야 한다.

현행법에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가 있다면 정리해고는 가능하게
돼있다.

현대는 올들어 가동률이 40%선까지 떨어지는 등 국제경쟁력제고 이전에
생존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게다가 적어도 2000년대초까지는 97년수준의 호황을 결코 기대하기
어렵다.

노사나 정부가 이런 문제를 인식했다면 현대자동차 사태는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투쟁이 아니라 명예퇴직제의 활용 등 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노사 양측은 자기입장만을 고집했고 정부 역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문제를 오히려 꼬이게 만들었다.

협상자세의 개선과 함께 협상능력도 제고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사태는 노사관련 단체뿐아니라 국내외 언론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당사자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협상에 대한 관심은 "협상에서의 관객효과
문제"라는 부작용을 가져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줄이기 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올수 있다.

비록 공정한 중재를 한다고 하더라도 명분문제에 매달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또한 협상대표의 발언이나 활동이 노출됨에 따라 협상대표끼리의 솔직한
대화를 어렵게 만들어 지엽적인 문제가 합의의 발목을 잡았다.

"협상에서의 가시성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의 보도협조를 확보하지 못해 완전히 합의되지도 않은 내용이
보도돼 분쟁 당사자들은 협상대표를 불신하게 되고 협상을 꼬이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정.중재 능력도 제고돼야 한다.

현대자동차 사태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당.정이 발벗고
나서 조정.중재를 시도했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조정.중재자가 당사자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조정.중재가 공권력 투입 직전에야 시작됨으로써 협상력의 균형을
깨뜨려 오히려 불신을 초래한 점도 없지않다.

또한 조정.중재대상에 위법.불법한 사항이 포함돼서는 곤란하다.

특히 조정.중재자가 노동정책의 입안자이자 집행자일 때 조정.중재안으로
합의에 도달한다 해도 정책전반의 신뢰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할 정부와 여당이 이번 사태에 깊숙이 개입함에
따라 얻은것보다 잃은것이 많다는 비난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