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커피를 마시는데 여자가 이것저것 물어도 사오정은 묵묵부답이다.
"과묵하신가 봐요"
"..."
"제가 마음에 안드세요"
그러자 사오정이 하는 말.
"이거 맥심 맞지?"
최불암.만득이 시리즈가 잠잠해지더니 이번엔 사오정시리즈가 유행이다.
여기서의 사오정은 KBS2TV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허영만작)에
나오는 캐릭터다.
귀가 덮여 있어 말귀를 못알아듣고 딴소리를 한다.
사오정시리즈는 96년말 PC통신을 통해 등장했지만 인기를 못얻다
"슈퍼보드"4부 방송전인 6월부터 급속히 확산됐다.
요즘엔 PC통신에서 하루 수십건씩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
이 시리즈에는 광고카피를 차용한 게 많다.
조용한 숲속에서 걸려온 휴대전화를 안받다 스님이 받으라고 하자
사오정이 "스님, 딴세상을 만날 땐 조용히 하세요"하는 식이다.
패스트푸드점 광고에서 "이거 경차 맞아요"하고, "자장면 시키신분"을
찾다 "방금 취소했어"해도 "3천원입니다"라며 꾸벅 절한다.
아기가 "엄마마마마마" 해도 사오정의 대답은 "아빠래요"다.
이럴경우 해당광고의 내용을 모르면 도무지 우습지가 않다.
생각을 요구하는 것도 있다.
길을 묻는 어른에게 사오정이 "성냥 없는데요"하거나, 월드컵축구
네델란드전에서 다섯번째 골이 들어가자 "안되겠다, 최용수 빼고 차범근
들어가라고 해" 하는 것 등이다.
유머는 사회현상에 대한 리트머스시험지다.
사오정시리즈가 유행하는 까닭은 받아들이기 싫은 게 많은 현실탓이라고
한다.
가는귀 먹은 노인처럼 필요한 얘기외엔 못들은체 하고픈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꾹 참고 사는 이들의 잠재욕구를 담아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는
해석도 있다.
유머의 경우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 때쯤이면 소멸된다.
주인공이 같은 연작유머로 가장 오래된 것은 참새시리즈다.
맹구.최불암.만득이시리즈도 장수품이다.
한동안 퍼지던 말시리즈는 금방 끝났다.
보들레르는 일찌기 현대성을 "덧없는 것, 순간적인 것, 우연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사오정시리즈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