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부 쓰루히코 가쿠슈인대 교수는 종신고용이나 M&A에 대한 반감 등 일본
기업들의 낡은 이데올로기가 바뀌지 않는한 일본 기업은 결코 미국 기업을
능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때 일본식 경영이 우수해 보였던 것은 미국기업들의 상대적 실패에 의한
것일 뿐 일본기업 스스로의 경쟁력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세미나경제학이라는 잡지에 게재된 난부 교수의 기고문을 전재한다.

< 정리=박재림 기자 i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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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가 심각한 불황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정부는 최근 들어서야 겨우 불황의 심각함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플랜으로 추진하고 있는 재정건전화 등의 정책이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부에서는 소비세를 낮추라고 하지만 재정을 건실히 하기 위해서는 당장
그럴수도 없다.

이같은 경제정책상의 어려움과 함께 지적해야 하는 것이 일본기업들의
형편없는 성적이다.

버블기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을 능가한다는 기대를 모았던
"일본식 경영"이란 어디로 가버렸는가.

미국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아주 최근까지 강조돼 왔던 것이 일본식 경영이란
것이다.

그 특징으로 지적된 것들을 키워드를 통해 열거해 보면 대충 일본식 경영의
윤곽이 잡힌다.

첫째는 종신고용이다.

사람들은 한번 어떤 회사에 취직하면 정년퇴직할 때까지 그 회사에서 근무
하는 것을 당연시해 왔다.

그래서 만약 회사를 옮기게 되면 "전에 있던 직장에서 뭔가 안좋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둘째는 연공서열이다.

특히 임금수준이 기업에서 가지고 있는 연령에 준한 임금표에 의해서 결정
된다.

나이가 적으면 아무리 우수한 직원이라도 나이 많은 사람에 비해 임금이
높을 수 없다.

직원들이 맡게되는 업무도 역시 연령순에 의해 할당되는 것이 통례였다.

셋째 팀방식이다.

어느 한사람의 우수한 개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팀워크에 의해 생산
하고 판매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오히려 이례적으로 우수한 사람은 팀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상의 세가지는 지금에 와서는 매우 상식적인 키워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식 경영에는 이욍도 다음과 같은 세가지 정도의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기업합병인수(M&A)에 대한 혐오감이다.

M&A는 구미사회에서는 기업의 성장과 재편에 있어서 아주 당연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무임승차"라는 단어로 집약되는 것처럼 좋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A를 하더라도 대등하게 통합했다는 거짓 위장하기
까지 한다.

두번째로 낮은 이윤율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올리는 이윤은 마치 위에서 짓누른 것처럼 아주
낮다.

특히 첨단분야를 다루는 기업의 이윤은 서구기업들의 그것에 비해 절반
수준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내의 임금격차가 아주 적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미국 최고경영층의 임금이 높다는 것에 대해 30년전에도
놀랐지만 지금도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반대로 기업내에서 왜 사장과 평사원간의 임금격차가 10배에도 못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과거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이런 특징들은 상호간에 밀접하게 연계된 것들로, 결코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편 일본및 유럽기업들의 맹추격을 받고 추격당한 것으로 보였던 미국
기업들은 지난 70년대까지 어떤 역사적인 속박상황에 있었다.

그 속박의 하나는 50년에 설립된 셀러 키포버법이다.

이 법은 반득점법(Antf-trust)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다.

셀러와 키포버라는 의원들은 플랭클린 루즈밸트가 대통령이었던 30년대부터
수십년동안 대기어벵 반대하는 기수였다.

그들은 대기업을 잘게 나눠서 세분화하는데 모든 정열을 쏟았다.

이들의 생각은 지금에 와서는 이상한 것으로보이지만 30년대에는 조금도
이상하지도 희귀하지도 않는 아주 평범한 사회개량론자들의 사고였다.

50년에 성립한 법을 통해 대기업을 세분화하지는 못했지만 기업상호간의
합병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그리고 70년대까지 반독점법에 관한 소송이 일어나면 이 법이 원칙으로
여겨져 완전히 다른 업종간의 합병을 제외하곤 모든 합병이 금지돼 왔다.

두번째 속박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은 2차대전보다도 훨씬 전에
형성됐던 피라미드모양의 조직관리형태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 조직은 M&A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기업을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는 차원
에서 나름대로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관료제나 다름없는
것이다.

80년대 미국에서 M&A가 창립했을 때 식자들이 날카롭게 지적했던 것이
바로 이 대기업형 관료제가 가지고 있는 비효율성과 고객및 주주들에 대한
무시하는 태도였다.

한마디로 당시 미국기업,특히 대기업들의 모습은 역동적인 발전이나 진보적
인 기업의 조직개편이 결코 내부에서 일어나기를 바랄 수없는 지극히 폐쇄적
인 것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쟁상대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일본기업들이다.

일본기업은 미국기업들과 같은 역사적인 속박으로부터는 자유로웠다.

처음에는 일본기업들이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우선 일본기업들은 기업규모나 자금력 자금조달력에서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세계시장에서 브랜드로서의 힘이 전혀 없었고 유통네트워크도 불비한
상태였다.

또 기업내부를 보면 미국의 최고경영자들은 경력이나 교양 정치적 영향력
등 종합적인 면에서 일본의 상대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느 때인가부터 일본기업들이 연전연승하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일종의 "환상"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싶다.

앞서 열거했던 6가지의 일본식 경영은 전후 일본의 경영스타일로 확립된
것이지만 이같은 경영스타일을 지키는 동안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우선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란 것은 기업이 효율적으로 인적자원을 사용
하고자 할 때 그 속박이 될 수는 있어도 결코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능력이란 면에서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해고할 수 없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이 이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또 기업간 M&A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은 기업내부의 무능한 사람이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앉게 되더라도 이 사람을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의해서
추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M&A가 필요없는 경제란 어떤 기업이든 가장 우수한 경영자를 내부로부터
선발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갖고 있을 때 실현가능한 것이다.

즉 내부혁신 내부정화의 힘일 강할때 M&A로 인한 외부의 압력이 필요없게
된다.

그러나 이는 참담한 현실을 경험해보지 않고는 쉽사리 배양되는 힘이
아니다.

팀방식이란 것도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팀워크에 의해 승리한다고 하지만, 드림팀(최우수 프로농구선수들로
구성된 미국농구국가대표팀)과 보통의 팀이 싸우면 결과가 뻔한 것처럼,
상대방의 팀 구성원들과 1대 1로 승부를 벌여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팀워크라도 승리할 수 없다.

저이윤률과 최고경영자의 대우가 빈약하다는 것은 기업가정신 인센티브 등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단지 사람좋은 자기회생적인 기업가의 출현을 전제로 효율적인 경제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일본식 경영이란 것은 자체의 힘으로 한번도 미국에 이겨보지 못했다.

승리한 것처럼 보였던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느 어느 학자가
얘기하듯 "라이벌의 실패"에 의한 것이다.

미국의 실수에 의해 일시적으로 이긴 것으로 보인 것을 일본식 경영의
우수성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