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6일 제일은행의 불법주총을 인정한 것은 법대로만 판결할 경우
금융계에 미칠 현실적 파장을 고려한 것이다.

법대로 판결하는 것이 법원의 소명이긴 하지만 "법대로"가 경제계에 미칠
혼란을 법원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법원이 주총의 불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원심을 뒤집는 모순된 판결을 내린
데서 법과 현실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이로써 제일은행은 소액주주반란이라는 걸림돌을 뛰어넘어 경영정상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은 무엇보다 현실안정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주총의 불법성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주총에서 뽑힌 임원들이 사임해야
할뿐아니라 이들이 시행한 각종 경영정상화 정책도 원인무효가 되는 혼란이
야기된다.

이럴 경우 제일은행의 경영정상화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특히 그동안 임원들이 결정한 자본감소(감자)와 한국은행 특별융자
1조원지원 등이 없었던 일이 돼 제일은행은 벼랑에 설 수 밖에 없다.

여기에다 현재 진행중인 외자유치나 제3자매각 등의 프로그램도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게 돼 도산이 불가피해진다.

재판부는 이같은 현실적 제약요인을 인정해 준 것이다.

법원은 또 소송을 낸 원고가 제일은행의 주주인점을 고려해 취소결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주주는 회사가 잘 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인 만큼 소송에서 이기는 명분보다
회사를 살리는 쪽이 주주의 이익에도 맞는다고 봤다.

특히 이번 소송을 대리했던 "참여연대"가 이번 소송은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선에서 그치겠다고 한 것도 재판부의 판단에 기여했다.

주총의 불법성을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제일은행의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정상화계획까지 소급적용해
무효화하지 않은 게 원고측으로서도 수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예금자의 이익과 대외신인도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주총이후 시행된 각종 경영정상화계획을 무효화할 경우 24조원의 예금인출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 제일은행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면 가뜩이나 추락돼있는 대외신인도가
더욱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이 불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결론을 달리 낸 것은 말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법이 현실을 지나치게 고려하면 법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불법주총을 인정해주는 선례가 남게 되면 다른 기업의 주총에서
불법행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손성태 기자 mrhan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