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종현 회장은 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전경련을 오너 회장 체제로
복귀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이후 3연임하면서 올초 건강상의 이유로 실질적인 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근 5년간 재계의 결속과 단합을 이끌어 왔다.

호황에서 불황으로, 1세체제에서 2세체제로 바뀌는 변혁기의 한 복판에
서서 재계 선진화를 주도했던 "재계 총리"였다.

최 회장은 특히 시장경제주의의 신봉자로서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극심한 경쟁 환경에서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었던 재계의 화합을
이끌어낸 것은 그의 공적으로 꼽힌다.

지난 93년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서 단일컴소시엄을 구성해내 경제계
의 자율조정 능력을 보여준 것이 그 예다.

그는 전경련의 각종 회의체를 활발하게 가동시켜 재계가 이견을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

그가 취임한 이후 활성화된 회장단회의와 기조실장회의, 자율조정위원회
등이 그것이다.

최 회장은 재계 원로들을 명예회장이나 고문으로 추대하고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2세 또는 1.5세들을 부회장으로 선임해 회장단 회의를 활성화
했다.

회원사의 의견을 적극 수렴함으로써 재계의 화합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매월 둘째주 화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각종 경제
현안과 사회문제들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구심체로
자리잡았다.

전문경영인인 30대그룹 기조실장들이 참가하는 기조실장회의(현 구조조정
위원회)를 구성, 전경련 운영에 참여시킴으로써 오너중심이라는 전경련의
이미지를 순화시킨 것도 최 회장의 공적 가운데 하나다.

이 회의는 회장단 회의에서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나 실무적 검토가 필요한
경제현안들에 대해 전문경영인들의 현장 감각을 수렴하는 회의체이다.

이런 회의체 활성화를 통해 최 회장은 전경련을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체제로 만들었다.

대.중소기업간 협력강화 사업과 국가경쟁력강화민간위원회 운영도 최 회장
의 캐릭터가 묻어 있는 대목이다.

최 회장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함께 대.중소기업협력위원회를 구성해
자율적인 협력사업을 추진했다.

자본금 2백90억원규모의 중소기업팩토링회사를 설립했다.

최 회장 체제하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는 최 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는 경제5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국가경쟁력강화민간위원회는 반드시 직접
챙기는 등 애착을 보였다.

결국 IMF(국제통화기금)체제로 빛이 바랬지만 최 회장 시절 재계의 중요한
활동의 하나였다.

물론 최 회장 체제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은 성격 탓에 그의 발언이 자주 문제됐었다.

그때마다 전경련과 선경은 곤욕을 치렀다.

지난 95년 2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최 회장은 "선단식 경영이 문제될 것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선경 계열사가 곧바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재임 중 전경련은 각종 현안에 대해 재계의 입장을 분명한
목소리로 밝혀 왔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평가다.

또 1백대 핵심규제완화 과제를 발굴해 정부에 건의한 것을 비롯 기업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일을 했다는 점도 회원사들이 인정하고
있는 대목이다.

한편 최 회장의 타계에도 불구하고 전경련 체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5월 최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김우중 대우회장에게 전경련직
회장대행을 맡겼기 때문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내년 2월 새 회장의 임기 시작전까지는 지금처럼 김우중
회장대행 체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