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매출을 만회하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분위기마저 감돈다.

화장품업체들은 올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화장품시장에서는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거품이 꺼지면서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상위권 업체들이 잇따라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하반기에도 또 어느 업체가 쓰러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유통질서는 극도로 문란해졌다.

시중에는 부도업체들의 땡처리 제품이 범람하고 있다.

자금이 급한 중하위권 업체들도 앞뒤 가리지 않고 덤핑에 뛰어들고 있다.

정상적으로 장사하려는 업체들에는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올 가을 화장품시장의 특징은 새 브랜드나 신제품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새로운 제품을 내지 않는 것은 이를 시장에 정착시키는데 막대한 자금이
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업체들은 기존 제품을 약간 개선한 "리뉴얼 제품"이나 "어드밴스트
제품"만으로 판매전선에 나서고 있다.

그 대신 기존 제품의 인지도를 적극 활용하는 마케팅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싸움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포인트 메이크업 제품.

립스틱 아이섀도 등 메이크업 제품들은 불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금사정이 어려울 땐 소비자들이 메이크업 구매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화장품업체들은 머뭇거리는 여성고객들의 소매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 메이크업시장의 색은 회색 갈색 자주색 등이다.

침체된 사회 분위기 탓에 화사한 색보다 저채도.저명도의 색, 흑백영화를
연상시키는 색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업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어려운 때일지라도 희망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비교적 밝은 색을
끼워넣은 업체도 있다.

반대로 어떤 업체들은 현실을 반영하는데 충실하고 있다.

기초화장품시장에서는 양극화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화장품업체들은 리뉴얼 제품을 출시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약해진
점을 적극 감안했다.

포장 용기 등에서도 돈을 절감, 화장품 값을 낮추거나 용량을 늘렸다.

이른바 "IMF제품"으로 입맛을 당기기 위해서다.

반면 상위권업체들은 값비싼 기능성화장품에 은근한 기대를 걸고 있다.

기능성화장품이란 주름을 제거하거나 검은 얼굴을 희게 바꿔 주거나 모공을
좁혀 피부를 매끄럽게 해주는 제품들을 말한다.

해당업체들은 성능이 입증된 기능성화장품의 인기는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발화장품에서는 비교적 호황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염모제시장은 올해도 20%대의 고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외국업체들이 판촉활동을 강화하고 있어 이 시장 역시 업체간
공방전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올 가을 화장품시장의 또하나의 특징은 외국계 업체들의 적극적인 공략이다.

우리나라의 화장품 수입금액은 문민정부 5년간 수직으로 치솟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했다.

외국 화장품업체들은 에이전트를 통한 시장공략이 한계에 달했다고 보고
한국시장 직접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프랑스계 다국적기업 로레알의 진출로 염모제를 비롯한 화장품시장에서
국내외업체들간 대격전이 시작됐다.

독일 웰라는 지난달 합작 파트너인 동아제약으로부터 명미화장품의 나머지
지분 50%를 인수한뒤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업체들은 떠나는 소비자들을 붙들면서 외국업체들의 공세를
맞받아 쳐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