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자멸의 길을 택한 것인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GM(제너럴 모터스)의 분규가 끝난 직후 한
칼럼니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2개월에 가까운 파업의 결과로 GM노조가 당장 몇 개의 일자리는 건졌는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더 큰 화를 잉태시켰다는 지적이었다.

구조조정을 가로막아 결국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나중엔 그 여파로
더많은 인원을 줄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논조였다.

실제로 GM 경영진은 분규가 타결된 이후 대대적인 제2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다.

노조의 입김이 센 부품공장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고 설계-조립-판매에
주력하겠다는게 골자였다.

조립공정의 경우도 기존 공장에 비해 인원이 절반정도만 필요한 첨단
자동화 공장으로 대체해 나간다는 방침을 덧붙였다.

GM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노조 비용(cost of unionization)"은 미국기업들
에게 점점 더 큰 멍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경제조사국에 따르면 미국 노조원들의 평균임금은 비노조원보다 15%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단순히 임금만 높은 게 아니다.

노조원들이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기 때문에 종업원도 더 채용해야 한다.

이 비용은 결국 회사의 원가상승으로 이어진다.

고스란히 회사의 경쟁력 약화 요인이 된다.

심한 경우에는 비용을 견디다 못해 회사 자체가 도태되는 수도 있다.

강성 노조에 시달린 끝에 자동화 투자로 탈출구를 모색하는 기업도 있지만
이 전략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이코노미스트인 브루스 팰릭이 쓴
보고서가 그 답변이다.

자동화 투자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면 노조는 반드시 생산성 향상 폭에
상응하는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이 "노조 비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사업장
축소밖에 없다는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핵심사업을 빼고 웬만한 것은 노조가 없는 하청업체에 용역을 주는 식으로
떼어 내거나, 아예 사업장을 노조운동이 약한 해외로 이전시키는 도리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최대의 피해자는 노조 자신이 된다.

극한 투쟁을 통해 회사를 벼랑 끝까지 내모는 행위는 노조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기다.

이는 50년대 초 27%까지 달했던 미국 민간 기업의 노조 조직률이 최근
10%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낮아진 이유를 설명해 준다.

미국의 노동 전문가인 헨리 파버와 앨런 크루거가 공동으로 작성한 또
다른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고 있다.

"많은 근로자들은 노조가 조합원들의 보호막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설 땅을
잃게 만들고 있다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고 있는데도
노조가 낡고 고루한 대립적 노선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 넣고 있어서다. 지금이라도 노조가 발상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쇠락의 길을 달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경영진이 노조에 분규의 빌미를 줄 만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우선 불필요한 자산을 정리하는 등 고통분담을 선행해야
한다.

구조조정의 한 복판에서 잇단 분규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노사가 다같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