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시장이 31일 드디어 일격을 맞았다.

옐친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 클린턴 대통령의 등뒤에서 터진
"블랙 먼데이"였다.

"드디어 미국도 당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과연 지구촌에 대공황이
오고말 것이냐"는 물음도 제기된다.

실제 그럴 만한 요인들이 널려 있다.

금융 외에 상품시장의 급락이나 엔달러 환율의 향방등이 모두 심상치 않다.

세계적 디플레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태국 바트화 폭락에서 비롯된 아시아 위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말
이었다.

"별 것 아닐 것"이라는게 미국의 당초 반응이었다.

직접적인 피해는 많아야 1천억달러에 불과할 것이고 이는 7조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내총생산(GDP) 규모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년이 지난 지금 위기가 확산일로에 있는 것은 물론 "악성 후유증이 지구촌
전체로 전염되고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상품가격의 하락등이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를 낳으면서 러시아 남미등이
차례로 당하고 있다는 분석들이 뒤늦게 제기되고 있다.

31일의 대폭락은 그 단적인 예다.

다우존스공업지수가 5백12.6포인트나 폭락한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야후, 델, 루슨트테크놀로지, 시스코, 3콤 등 내로라는 나스닥의 첨단주식들
이 줄줄이 곤두박질쳤다.

첨단주식들이 곤두박질쳤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었다.

아시아의 수요감퇴 못지 않게 미국 주가의 하락이 세계적인 소비감축을
불러올 것은 불문가지다.

31일의 주가하락만 해도 1인당 1만달러씩의 자산감소 효과를 불러 왔다.

미국 소비가 무너진다면 세계경제는 심각한 불황으로 몰릴 수 있다.

물론 금리인하등 정책선택의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미국정부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어떤 정책을 선택하건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본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두운 요인중의 하나다.

일본이 스스로 동력을 얻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마저 흔들린다면 세계
경제를 끌어갈 엔진은 모두 꺼져 버린다.

홍콩이 흔들리고 중국이 홍콩문제에 말려들고 있는 것도 우려할 상황이다.

중국은 홍콩을 지키기 위해 이미 너무 많은 출혈을 했다.

말레이시아 대만등 직접적인 위기를 맞지 않았던 나라들에서도 경기침체는
심각하다.

러시아 사태가 서유럽과 미국에서 갖는 함의는 결코 적지 않다.

미국주가가 폭락한 것은 투자자들이 러시아 사태를 맞으면서 싸늘한 곰
발톱(bear market)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1일부터 시작된 클린턴과 옐친의 정상회담이 무언가 생산적 대안을 만들어
낼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곧 의회에 제출될 케네스 스타검사의 섹스스캔들 보고서 또한 미국증시를
짓누르고 있는 또 하나의 변수다.

클린턴의 위상 약화와 G7 지도력의 상실, 이에 따른 위기관리체계의 붕괴는
금융공황의 그늘을 더욱 짙게 만들 가능성들이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