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이 르윈스키 사건에 휘말려 곤혹을 치르는 와중에서도 미국은
국정의 주요 관심사를 놓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통령정보기술자문위원회(PITAC)가 미국의 정보기술
현황과 향후과제를 묶어 2주일전에 클린턴에게 제출한 보고서다.

정보기술(IT)에 관한 한 미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마치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마쳐 놓고 아쉬우면 들어오라고 배짱튀기는
토지개발업자 같다고나 해야할까.

미국이 구축한 정보 인프라를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된 우리로서는
개발비의 수백배를 얹어 주면서도 뒷전이기 일쑤다.

그만큼 정보대국으로써 미국의 위치는 확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ITAC는 미국정부가 정보기술정책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다그친다.

투자가 미진할 할 뿐 아니라 정보기술이 어떤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비젼 또는 인식부족으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한 예로 "미국과학재단(NSF)이 실시한 정보기술관련 연구과제 공모에
1천1백여편의 응모가 있었지만 겨우 75개 과제에 자금이 지원됐을 뿐"이라고
꼬집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 과제에 집중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응모과제가 구체적이고 창의적이며 경제적으로 효용가치가
뛰어난데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주마가편)"가 이런 것인지 모른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창업자 빌 조이등 25명의 정보산업분야 최고경영자,
현직교수등이 모여 구성된 PITAC가 보는 미국의 미래상은 환상적이다.

산업, 통신, 교육, 상거래, 직장작업 형태, 의료, 사회인프라 건설방식,
환경등에 걸친 변화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중에서도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라 미국정부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그리는 부분은 정부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시사가 된다.

미국 시민들은 어디에 있건 어느 시간대에 있건 상관없이 필요한 모든
정보와 서류 또는 결론을 요청 즉시(instantaneously) 전자메일의 형태로
제공받게 된다.

정부건물과 업무시간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고 그 결과 공무원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얘기다.

"한 미국 시민이 붕괴직전 상태에 있는 빌딩에 갇혀 있다.

구조대는 그 빌딩의 모델을 3차원영상으로 즉시 제공받는다.

건물의 상태와 붕괴과정, 무게 중심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가 정밀하게
분석된다.

구출작전에 따른 리스크가 무엇이고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 구출 방법에
대한 대안을 제공받게 된다"

우리에게는 꿈같은 얘기지만 미국인들은 이같은 미국정부의 대민
일관(one-stop) 서비스형태가 2020년 안에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다.

PITAC는 이 보고서에서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을 강조했다.

"정보기술 발전여부는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단기적인 프로젝트들은 일반기업의 몫이다.

기업입장에선 돈을 벌기 위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연방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문은 리스크가 큰 장기적 안목의
프로젝트다.

정부의 역할은 일반기업들이 다루기 어려운 리스크가 높은 부문을 떠맡는
데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는 크지만 그중 몇 개만 성공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한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결국 PITAC보고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느라 다른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PITAC보고서는 미래를 위한 사과나무 한 그루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