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 LG경제연구원장 >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 청사진, 소위 DJ노믹스가 보다 분명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낸 체제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와 경제체제로서의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
시키겠다는 것이 골자다.

관치경제로 인해 자기 책임과 자유 경쟁이라는 시장경제원칙이 확실히
정착되지 못했고 민주주의의 미발달로 인해 국민의 건전한 감시와 견제
기능이 취약해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만연시켜 우리경제가 이 지경이
됐다는 원인진단에 근거한 것이다.

정보화 세계화로 특징지어지는 무한경쟁의 세기, 21세기에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율과 창의가 샘솟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사회를 가능케 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조화시키고 병행 발전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기간에 쉽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DJ노믹스를 운영하고 구현해 나갔으면
한다.

첫째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자유 경쟁 책임이라는 원칙은 공유하고 있으나
운영원리는 다르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한 표의 투표권을 부여
하는 "1인1표주의"에 입각한 다수결 원칙을 운영원리로 하는 정치체제다.

이에 비해 시장경제는 구성원들에게 "1원1표주의", 즉 각자가 가진 돈만큼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투표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10만원을 가진 사람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표를 10만표 가진 셈이고
1백원을 가진 사람은 1백표를 가진 셈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사 결정은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
경제적 의사 결정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돈으로 유권자들의 표를 매수해 금권 선거를 하면 "1인1표주의"가 깨져
민주주의가 왜곡되듯이, 재화의 생산이나 소비와 같은 경제적 의사 결정에
"1인1표"의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되면 경제는 효율성을 잃고 망가지게 된다.

정부나 국민들이나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를 혼동함이 없이 정확히 적용하는
것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함께 성공시킬 수 있는 열쇠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시장경제나 민주주의나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연원을 1776년에 발간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찾는다면
자본주의는 2백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또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의 근원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새롭게 발견된 "개인"의 존재가 인정되고 "주권재민"이라는 개념이 성립한
18세기의 근대시민국가에서 찾는다면 이 역시 2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셈이다.

서구에서 실현되고 있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적어도 2백~3백년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 또는 프랑스나 독일 같은 선진국 수준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짧은 기간 내에 달성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경제나 민주주의가 제도로서 뿌리를 내리고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에 맞는 의식, 민주주의에 맞는 의식이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에 대한 믿음, 평등 및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 책임의식,
공정한 경쟁원칙의 준수, 준법정신, 근면 성실한 생활태도 등 국민들의
의식과 행동이 제도를 받쳐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적 권위주의에 찌든 척박한 토양에 서구적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식해 성공시킨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 토양과
기후에 맞는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시장경제를 일궈낸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정책 담당자들은 김 대통령 재임 기간중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꽃피우고 커다란 열매를 맺게 하려고 조급해 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튼튼히 자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초석을 놓기만
해도 역사에 커다란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성공은 바로 우리 경제의 성공, 우리나라의 성공이다.

DJ노믹스가 나라의 면모를 일신하고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초석을 놓은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남길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이자
도구가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