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알고 봅시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최고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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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금동미륵보살반가
사유상.국보 83호)은 현재 남아있는 38구의 반가사유상중 최고의 걸작이다.
신라인이 만든 작품인지, 백제인이 만든 작품인지 아직 학술적으로
판명되지는 않았지만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미륵보살의 향취는 지금도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반가상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직후(6~7세기)에 유행했던 불조양식이다.
이 시기엔 삼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후세에 구원을 받는다는
미륵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같은 혼란기에 탄생한 걸작이 바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이 반가사유상은 오른손을 들고 손끝을 턱에 댄 모습으로 불교철학의
근간인 사유를 잘 보여준다.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넘침이나 모자람 없이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일본은 고류지에 있는 목조 미륵반가사유상을 국보 1호로 자랑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작품을 "인간존재의 가장 청정한,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표징"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흡사하면서도 표현력이 뛰어난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야스퍼스가
봤다면 어떻게 평가했을까.
< 오춘호 기자 ohc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4일자 ).
사유상.국보 83호)은 현재 남아있는 38구의 반가사유상중 최고의 걸작이다.
신라인이 만든 작품인지, 백제인이 만든 작품인지 아직 학술적으로
판명되지는 않았지만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미륵보살의 향취는 지금도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반가상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직후(6~7세기)에 유행했던 불조양식이다.
이 시기엔 삼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후세에 구원을 받는다는
미륵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같은 혼란기에 탄생한 걸작이 바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이 반가사유상은 오른손을 들고 손끝을 턱에 댄 모습으로 불교철학의
근간인 사유를 잘 보여준다.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넘침이나 모자람 없이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일본은 고류지에 있는 목조 미륵반가사유상을 국보 1호로 자랑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작품을 "인간존재의 가장 청정한,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표징"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흡사하면서도 표현력이 뛰어난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야스퍼스가
봤다면 어떻게 평가했을까.
< 오춘호 기자 ohc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