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후 꽁꽁 얼어 붙어버린 소비가 물가하락을 부채질
하며 "저성장 저물가"라는 디플레의 늪으로 한국경제를 몰아넣고 있다.

특히 통계청이 발표한 "올 상반기 가계수지 동향"은 실질소득감소에 비해
소비지출이 훨씬 더 위축됐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디플레가 몰고올 파장이 더욱 우려된다.

실제로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에 전형적인 디플레 과정을 밟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작년말 외환.금융위기로 폭락한 자산가치는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6백대에서 절반이하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여전히 3백선에서 오락가락
한다.

지난 6월이후 다소 올라가는 듯하던 집값도 이사철이지만 여전히 바닥수준
이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선 아파트값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도산과 실업급증으로 국민들의 소득은 크게 줄었다.

지난 2.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실질소득은 작년 같은기간에 비해 12.5%
감소했다.

지난 80년 오일쇼크 이후 18년만에 최악의 감소세다.

소득이 줄면 소비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엔 소비감소폭이 너무 지나치다는데 문제가 있다.

2.4분기중 실질소비지출은 19.7%나 감소했다.

못벌고 안쓰니 물가가 오를리 없다.

지난 3월이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계속 하락세다.

지난 8월 0.3% 오르긴 했지만 그건 홍수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때문
이었다.

실제 지난달 공산품 물가는 전달에 비해 0.5%나 떨어졌다.

줄어든 수입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소비위축->저물가->생산감소->기업
도산->실업자 양산->소득감소->소비위축이란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 사태이후 대외여건마저 악화돼 수출까지 넉달째 감소하고
있다.

경제기반 자체가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올만한 상황이다.

게다가 정부의 대응도 시원치 않다.

정부 스스로도 "최근의 내수침체 정도는 예상 밖"(현오석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이라면서도 내놓는 대책이란 건 과거의 틀을 못벗고 있다.

최근 내수진작을 위해 주택할부금융 등 소비자금융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는 했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특별소비세와 부가가치세 인하 등 적극적인 감세정책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세수부족을 걱정해 우물쭈물하고 있는 형편이다.

김준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한국경제는 지금 과거와는 정반대
인 디플레를 경험하고 있다"며 "그런 만큼 정부도 획기적인 내수진작책을
강구하는 등 정책발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