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 '성철스님 다비식 장면전' 앞둔 김호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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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호석씨(41)는 요즘 온통 "성철스님"에 빠져 산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10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은 성철스님의 다비식
장면을 담은 작품을 온전하게 그려내기위한 "전쟁터"다.
가로 1.8m, 세로 3m 크기의 대작 단 한점으로 여는 전시회.
입적 5주기를 맞아 오는 10월 9일부터 동산방화랑에서 마련되는
"성철스님 다비식 장면전"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4년전부터 준비해왔고 붓질을 시작한지도 1년이 넘었지만 아직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부처와 중생을 하나로 보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세상을
깨우치려 했던 "지고의 선객".
그 큰 스님을 떠나 보내는 자리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모든게 물질로 재단되는 요즘 정신의 표상을 잃고 슬픔에 잠긴 중생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게 좋은가.
화면 아랫쪽에 다비식 장면을 배치하고 윗쪽엔 긴 줄을 형성한 조문인파를
그리기로 구도를 잡았다.
또 풍경화적 요소를 없애기위해 산과 나무는 거의 없이 대부분의 화면을
사람들로 채워넣기로 했다.
"애도와 흐느낌으로 뒤덮여 있다가 다비식이 끝나서 돌아가려고 보니
그제서야 멀리 산과 나무가 흐릿하게 보이는 느낌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육신의 덧없음과 정신의 중요함을 강조하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인파를 표현하는 방법.
화면안에 그려넣을 예정인 4만여명의 조문객 하나 하나의 표정과 동작이
달라야 한다.
지금까지 그린 1만여명은 그런대로 특징을 담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머지 3만여명을 표현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한달은 화가로서의 혼과 기량을 남김없이 쏟아붓는 기간이
될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어렵지만 어떻게든 해낼겁니다.
작품을 전시장에 걸어놓고 나서 어디론가 잠적해 버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성철스님 다비식을 그리게 된 것은 그가 인물초상화에 남다른 정열을 갖고
있는데서 비롯됐다.
그는 70년대말 수묵화운동의 한 가닥을 잡고 화단에 들어섰다.
이후 생활현장과 사람들의 소묘, 시대모순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거쳐 그가
도달한 것은 인물초상화.
초상의 대상은 황희 안창호 전봉준 등 역사인물에서부터 성철스님
김수환추기경, 우리 이웃의 얼굴, 자신의 가족까지 다양하다.
그는 인물을 단순히 모사하는 것이 아니다.
인물의 외모는 물론 내면세계까지 표현해 내는 전신기법을 쓴다.
때론 인물초상이 적극적 현실참여의 방안이 되기도 한다.
88년작 "항거-황희"라는 작품에선 눈을 4개 그려 암울한 현실에 대한
무언의 항거를 나타냈다.
아래쪽 눈은 원래의 눈이고 붉은 색으로 칠해진 윗쪽 눈은 조선조 명재상
황희가 바라본 80년대의 뒤틀린 현실을 상징한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그림도 결국 살아가는 현실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전통 미감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해 이땅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는
작업에 꾸준히 매달릴 겁니다"
그는 이번 전시를 끝낸 후엔 우리의 토종동물 그림을 통해 사람사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 이정환 기자 jhlee@ >
<< 약력 >>
<>57년 전북 정읍생
<>81년 홍익대 미대졸업
<>86년 첫 개인전이후 지금까지 개인전 7회 개최
<>98년 10월 성철스님 다비식 장면전 예정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7일자 ).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10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은 성철스님의 다비식
장면을 담은 작품을 온전하게 그려내기위한 "전쟁터"다.
가로 1.8m, 세로 3m 크기의 대작 단 한점으로 여는 전시회.
입적 5주기를 맞아 오는 10월 9일부터 동산방화랑에서 마련되는
"성철스님 다비식 장면전"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4년전부터 준비해왔고 붓질을 시작한지도 1년이 넘었지만 아직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부처와 중생을 하나로 보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세상을
깨우치려 했던 "지고의 선객".
그 큰 스님을 떠나 보내는 자리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모든게 물질로 재단되는 요즘 정신의 표상을 잃고 슬픔에 잠긴 중생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게 좋은가.
화면 아랫쪽에 다비식 장면을 배치하고 윗쪽엔 긴 줄을 형성한 조문인파를
그리기로 구도를 잡았다.
또 풍경화적 요소를 없애기위해 산과 나무는 거의 없이 대부분의 화면을
사람들로 채워넣기로 했다.
"애도와 흐느낌으로 뒤덮여 있다가 다비식이 끝나서 돌아가려고 보니
그제서야 멀리 산과 나무가 흐릿하게 보이는 느낌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육신의 덧없음과 정신의 중요함을 강조하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인파를 표현하는 방법.
화면안에 그려넣을 예정인 4만여명의 조문객 하나 하나의 표정과 동작이
달라야 한다.
지금까지 그린 1만여명은 그런대로 특징을 담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머지 3만여명을 표현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한달은 화가로서의 혼과 기량을 남김없이 쏟아붓는 기간이
될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어렵지만 어떻게든 해낼겁니다.
작품을 전시장에 걸어놓고 나서 어디론가 잠적해 버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성철스님 다비식을 그리게 된 것은 그가 인물초상화에 남다른 정열을 갖고
있는데서 비롯됐다.
그는 70년대말 수묵화운동의 한 가닥을 잡고 화단에 들어섰다.
이후 생활현장과 사람들의 소묘, 시대모순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거쳐 그가
도달한 것은 인물초상화.
초상의 대상은 황희 안창호 전봉준 등 역사인물에서부터 성철스님
김수환추기경, 우리 이웃의 얼굴, 자신의 가족까지 다양하다.
그는 인물을 단순히 모사하는 것이 아니다.
인물의 외모는 물론 내면세계까지 표현해 내는 전신기법을 쓴다.
때론 인물초상이 적극적 현실참여의 방안이 되기도 한다.
88년작 "항거-황희"라는 작품에선 눈을 4개 그려 암울한 현실에 대한
무언의 항거를 나타냈다.
아래쪽 눈은 원래의 눈이고 붉은 색으로 칠해진 윗쪽 눈은 조선조 명재상
황희가 바라본 80년대의 뒤틀린 현실을 상징한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그림도 결국 살아가는 현실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전통 미감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해 이땅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는
작업에 꾸준히 매달릴 겁니다"
그는 이번 전시를 끝낸 후엔 우리의 토종동물 그림을 통해 사람사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 이정환 기자 jhlee@ >
<< 약력 >>
<>57년 전북 정읍생
<>81년 홍익대 미대졸업
<>86년 첫 개인전이후 지금까지 개인전 7회 개최
<>98년 10월 성철스님 다비식 장면전 예정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