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프로] (6) 제1부 : <5> '사운드 디자이너'..이인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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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32)씨가 영화를 보는 방법은 별나다.
음향시설이 잘된 극장만 간다.
가능하면 한복판에 앉게 해달라고 표파는 아가씨를 조른다.
영화는 눈을 감고 본다.
아니 "듣는다"고 해야 옳다.
대사와 음악 그리고 음향만으로 영화를 느낀다.
가끔씩 눈을 떠 "감각"을 점검하기도 한다.
새벽까지 작업을 한 날엔 잠에 빠질 때도 있다.
남들은 포옹하는 남녀를 주시하지만 그는 껴안을 때 나는 옷자락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공포영화를 보다가 옆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도 귀를 쫑긋 세운채 귀곡성을
쫓아간다.
이 습관은 직업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는 "사운드 디자이너(sound designer)"다.
영화의 음향과 녹음을 책임지는 엔지니어다.
지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사운드디자이너가 된지는 채 2년이 안된다.
그렇지만 이미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영화전체의 질감을 느끼고
마지막 덧칠을 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그의 실력을 평가했다.
이 영화의 몇 장면을 보자.
주인공 한석규는 손을 씻다가 하늘을 쳐다 본다.
빗방울이 하나둘 안경위로 떨어졌다.
너무나 일상적이면서도 불안한 사인.
이인규씨는 곡선의 안경위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무심한 빗소리로 이를
표현했다.
여주인공 심은하가 아이스바를 먹는 길가.
가로수가 하늘하늘 흔들린다.
새로운 희망을 담고 다가오는 바람을 그는 서늘한 소리로 담아냈다.
감각적인 측면 뿐만 아니다.
기술면에서도 이미 검증된 상태다.
지난 5월 프랑스 칸 견본시장에서 3백만달러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던
영구아트무비의 "용가리"는 그가 녹음한 작품이다.
2분짜리 예고편인 이 작품은 드라마도 없고 대사도 없다.
특정한 장면 몇개를 특수효과필름과 음향만으로 담은 것이다.
"이런 장면을 이 정도 소리와 함께 만들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 시제품
이랄까.
그게 세계시장에서 먹혀든 것이다.
소리와 관련된 그의 재능엔 사연이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대학(경희대) 전공도 음악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까도 했지만 컴퓨터음악이 더 좋았다.
실력이 알려지면서 학원에서 강의도 했다.
영화마니아이기도 한 그는 서른살이 가까워오면서 갈등도 느꼈다.
"돈"이 되는 건 분명 영화음악이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를 택했다.
나름대로 독특한 컬러를 형성한 국내 영화음악에 비해 사운드분야는 세계
수준과 너무 차이가 컸다.
반대로 말하면 "개척해 볼만한" 신천지였던 것이다.
마침 선배이자 사운드디자이너인 오원철씨가 지난해초 라이브톤을 만들면서
그를 불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첫영화 "비트"가 인정받으면서 일이 끊이지 않았다.
"찜" "나쁜 영화" "강원도의 힘" 등이 그의 귀를 통과한 영화들이다.
요즘은 강수연이 주연할 "처녀들의 저녁식사" 예고편을 만들고 있다.
그는 언어문제가 있는 대사나 문화가 담긴 영화음악과 달리 "소리"는 세계
어디서든 금방 우열이 가려진다고 강조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분야라는 설명이다.
지금처럼 편집 녹음 등을 1~2주일만에 해치워서는 후반작업에 제작일정의
절반을 할애하는 미국 영화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꼬집었다.
"소리에 미친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해요.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스타워즈"나 "쥬라기공원"처럼 소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한국영화
대작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그의 말이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제보접수 powerpro@ked.co.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8일자 ).
음향시설이 잘된 극장만 간다.
가능하면 한복판에 앉게 해달라고 표파는 아가씨를 조른다.
영화는 눈을 감고 본다.
아니 "듣는다"고 해야 옳다.
대사와 음악 그리고 음향만으로 영화를 느낀다.
가끔씩 눈을 떠 "감각"을 점검하기도 한다.
새벽까지 작업을 한 날엔 잠에 빠질 때도 있다.
남들은 포옹하는 남녀를 주시하지만 그는 껴안을 때 나는 옷자락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공포영화를 보다가 옆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도 귀를 쫑긋 세운채 귀곡성을
쫓아간다.
이 습관은 직업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는 "사운드 디자이너(sound designer)"다.
영화의 음향과 녹음을 책임지는 엔지니어다.
지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사운드디자이너가 된지는 채 2년이 안된다.
그렇지만 이미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영화전체의 질감을 느끼고
마지막 덧칠을 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그의 실력을 평가했다.
이 영화의 몇 장면을 보자.
주인공 한석규는 손을 씻다가 하늘을 쳐다 본다.
빗방울이 하나둘 안경위로 떨어졌다.
너무나 일상적이면서도 불안한 사인.
이인규씨는 곡선의 안경위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무심한 빗소리로 이를
표현했다.
여주인공 심은하가 아이스바를 먹는 길가.
가로수가 하늘하늘 흔들린다.
새로운 희망을 담고 다가오는 바람을 그는 서늘한 소리로 담아냈다.
감각적인 측면 뿐만 아니다.
기술면에서도 이미 검증된 상태다.
지난 5월 프랑스 칸 견본시장에서 3백만달러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던
영구아트무비의 "용가리"는 그가 녹음한 작품이다.
2분짜리 예고편인 이 작품은 드라마도 없고 대사도 없다.
특정한 장면 몇개를 특수효과필름과 음향만으로 담은 것이다.
"이런 장면을 이 정도 소리와 함께 만들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 시제품
이랄까.
그게 세계시장에서 먹혀든 것이다.
소리와 관련된 그의 재능엔 사연이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대학(경희대) 전공도 음악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까도 했지만 컴퓨터음악이 더 좋았다.
실력이 알려지면서 학원에서 강의도 했다.
영화마니아이기도 한 그는 서른살이 가까워오면서 갈등도 느꼈다.
"돈"이 되는 건 분명 영화음악이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를 택했다.
나름대로 독특한 컬러를 형성한 국내 영화음악에 비해 사운드분야는 세계
수준과 너무 차이가 컸다.
반대로 말하면 "개척해 볼만한" 신천지였던 것이다.
마침 선배이자 사운드디자이너인 오원철씨가 지난해초 라이브톤을 만들면서
그를 불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첫영화 "비트"가 인정받으면서 일이 끊이지 않았다.
"찜" "나쁜 영화" "강원도의 힘" 등이 그의 귀를 통과한 영화들이다.
요즘은 강수연이 주연할 "처녀들의 저녁식사" 예고편을 만들고 있다.
그는 언어문제가 있는 대사나 문화가 담긴 영화음악과 달리 "소리"는 세계
어디서든 금방 우열이 가려진다고 강조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분야라는 설명이다.
지금처럼 편집 녹음 등을 1~2주일만에 해치워서는 후반작업에 제작일정의
절반을 할애하는 미국 영화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꼬집었다.
"소리에 미친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해요.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스타워즈"나 "쥬라기공원"처럼 소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한국영화
대작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그의 말이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제보접수 powerpro@ked.co.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