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빅딜안에 대한 정부의 최종 입장이 정리되기 까지는 적지않은
혼선이 있었다.

정부지원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재계의
구조조정안에 대해 당초부터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반면 산업자원부는
환영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

이로 인해 부처간 이견을 조율하고 최종 방침을 정하기 까지는 5일이란
시간과 2차례의 관계장관 회의를 거치는 진통이 불가피했다.

지난 3일 5대그룹이 반도체 석유화학 등 7개업종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직후 정부의 첫 반응이 나온 곳은 산업자원부.

재계의 빅딜안 마련에 깊숙히 관여해온 산자부의 최홍건 차관은 3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재계가 "획기적인 안"을 마련했다"며 "앞으로 금융.세제상
의 지원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재경부와 금감위측은 말을 아끼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정부의 두번째 입장 표명은 다음날 금감위에서 나왔다.

4일 금감위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재계 스스로가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한
단초로 높이 평가한다"며 합작법인 등의 실질적인 경영주체가 불분명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과잉설비 처분 등 자구노력이 있어야 정부지원이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전날 산자부의 반응과는 방향이 1백80도 달랐다.

재경부는 여전히 코멘트를 삼가했지만 당연히 금감위 편이었다.

이처럼 부처간 의견이 엇갈리자 관계장관들이 모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규성 재경부장관, 박태영 산자부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강봉균 경제수석 등은 5일 오후 청와대에서 긴급 회동,
부처간 입장 조율에 나섰다.

역시 재경부와 금감위측의 목소리가 컸고 산자부는 긍정적인 소수의견을
제시하다 결국 발을 뺄 수 밖에 없었다.

청와대나 기획예산위 입장도 재경부 쪽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대세는 기울었고 정부는 재계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정리
하기로 했다.

지난 7일 밤 청와대에서 관계장관들이 다시 모인 것도 이를 위해서 였다.

여기선 정부 지원을 위한 재계의 자구노력 등 전제조건이 분명히 정리됐다.

또 5대그룹이 내달중순까지 구체적인 후속계획을 마련토록 하자는 것도
결정됐다.

결국 재계가 정부쪽으로 던진 "빅딜"이란 공이 다시 기업들에 넘어간
셈이다.

어쨌든 정부의 분명치 않은 입장표명으로 가슴을 조이던 5대그룹들은 다시
"숙제"를 떠안게 됐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