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사회의 먹이사슬..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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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인간만사에 남다른 통찰력을 보였다.
그의 희곡 "페리클레스"에 나오는 어부들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어르신네, 물고기는 바다에서 어떻게 살까요?"
"그야 뭍에서 인간들 살듯이 살지. 큰놈이 작은놈을 잡아먹고 말이야"
5백여년이 지난 오늘날 세상은 달라졌는가.
놀랍게도 세상사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은 몸의 덩치보다도 권력 돈 명성을 기준으로 사람들 사이에 상하.우열
의 지위가 결정된다.
말하자면 먹이사슬이 있는 셈이다.
요즘 떠들썩한 고액과외를 거쳐 일류대학에 입학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나.
영민한 학생들은 고시준비 하느라 정규교육을 외면한다.
대학의 고시학원화는 우리 사회에 먹이사슬이 존재한다는 것과 우월적
지위가 어느 직종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물론 아직도 캠퍼스를 소란하게 만드는 운동권 학생들이 있다.
선배의 인생역정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재야운동권에서 제도권으로, 정치의
주변에서 중앙무대로 진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야운동권이 나름대로 사회먹이사슬의 우월한 고지를 쟁취하는데
유리한 또다른 지름길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연의 섭리는 오묘하다.
자연은 환경변화를 만들고 이에 순응하는 생물만 살아남아 생태계를 이룬다.
동물계의 먹이사슬은 종족들의 숫적 균형유지에 이바지한다.
어떤 이유로 한 종족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먹이부족으로 과잉여분의 수를
소멸시킨다.
먹이사슬의 연결고리 아래위로 파급효과가 전달된다.
절묘한 것은 먹이사슬의 상위로 갈수록 그 수가 줄고, 포식자는 배고픔에
의하지 않고는 먹이를 살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연쇄고리 위로 올라갈수록 그 수가 적어야 하고, 아래 직종을 남획 말고
든든하게 밑받침하도록 보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발전의 기본 원동력은 의식주 등 기본수요를 충족하는 경제
활동에 있기 때문이다.
당면한 경제난국은 왜 왔는가?
우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등 세계경제질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국제화 개방화와 더불어 자유화로 대변되는 환경변화에 지난날 정부주도형
국민경제 운용방식의 맹위가 장애요인이었다.
아직도 시대착오적 "관치"경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장경제에도 정부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외부효과 독과점 정보비대칭 등으로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소득분배의
문제가 심화될 때 정부의 기능이 요청된다.
지난날 "관치"경제의 폐해는 명백하고 비판돼야 하지만 그래도 관료는
정책이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행동의 하한선이 있다.
취약점은 부패다.
"관치"보다 못한 것이 "정치"경제다.
정치인은 생리적으로 이해득실, 득표 극대화를 지향한다.
이익집단의 로비활동에 취약하다 보니 합리성은 뒷전으로 몰린다.
행동에는 하한이 거의 없다.
상당한 정치자금이 소요되는 한 정경유착은 불가피하고 부패에 가장
취약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먹이사슬 최상위에 직업 정치인이 자리잡게 되었다.
정치는 전부냐 전무냐의 게임이다.
승률은 낮으나 판돈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기대값이 괜찮은 노름이다.
민주화 이후 벌써 한 팀이 갈리고 새 팀이 들어선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요즘도 여의도 싸움이 치열한 것은 승패의 판가름이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를 되살리려면 사회 먹이사슬을 새로 짜야 한다.
정치에 의한 시장경제활동 침해사례가 최소화돼야 한다.
직업정치인의 수를 줄이고 질을 높여야 한다.
우수한 젊은이가 유형 무형의 무엇을 생산하는 직종을 선망해야 사회가
견실해진다.
정치 지망, 관료 지망의 야망을 버리고 스스로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
남을 먹이는 것이 젊은이의 꿈이어야 하고 응분의 보상을 받는 사회여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0일자 ).
그의 희곡 "페리클레스"에 나오는 어부들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어르신네, 물고기는 바다에서 어떻게 살까요?"
"그야 뭍에서 인간들 살듯이 살지. 큰놈이 작은놈을 잡아먹고 말이야"
5백여년이 지난 오늘날 세상은 달라졌는가.
놀랍게도 세상사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은 몸의 덩치보다도 권력 돈 명성을 기준으로 사람들 사이에 상하.우열
의 지위가 결정된다.
말하자면 먹이사슬이 있는 셈이다.
요즘 떠들썩한 고액과외를 거쳐 일류대학에 입학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나.
영민한 학생들은 고시준비 하느라 정규교육을 외면한다.
대학의 고시학원화는 우리 사회에 먹이사슬이 존재한다는 것과 우월적
지위가 어느 직종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물론 아직도 캠퍼스를 소란하게 만드는 운동권 학생들이 있다.
선배의 인생역정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재야운동권에서 제도권으로, 정치의
주변에서 중앙무대로 진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야운동권이 나름대로 사회먹이사슬의 우월한 고지를 쟁취하는데
유리한 또다른 지름길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연의 섭리는 오묘하다.
자연은 환경변화를 만들고 이에 순응하는 생물만 살아남아 생태계를 이룬다.
동물계의 먹이사슬은 종족들의 숫적 균형유지에 이바지한다.
어떤 이유로 한 종족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먹이부족으로 과잉여분의 수를
소멸시킨다.
먹이사슬의 연결고리 아래위로 파급효과가 전달된다.
절묘한 것은 먹이사슬의 상위로 갈수록 그 수가 줄고, 포식자는 배고픔에
의하지 않고는 먹이를 살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연쇄고리 위로 올라갈수록 그 수가 적어야 하고, 아래 직종을 남획 말고
든든하게 밑받침하도록 보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발전의 기본 원동력은 의식주 등 기본수요를 충족하는 경제
활동에 있기 때문이다.
당면한 경제난국은 왜 왔는가?
우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등 세계경제질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국제화 개방화와 더불어 자유화로 대변되는 환경변화에 지난날 정부주도형
국민경제 운용방식의 맹위가 장애요인이었다.
아직도 시대착오적 "관치"경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장경제에도 정부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외부효과 독과점 정보비대칭 등으로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소득분배의
문제가 심화될 때 정부의 기능이 요청된다.
지난날 "관치"경제의 폐해는 명백하고 비판돼야 하지만 그래도 관료는
정책이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행동의 하한선이 있다.
취약점은 부패다.
"관치"보다 못한 것이 "정치"경제다.
정치인은 생리적으로 이해득실, 득표 극대화를 지향한다.
이익집단의 로비활동에 취약하다 보니 합리성은 뒷전으로 몰린다.
행동에는 하한이 거의 없다.
상당한 정치자금이 소요되는 한 정경유착은 불가피하고 부패에 가장
취약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먹이사슬 최상위에 직업 정치인이 자리잡게 되었다.
정치는 전부냐 전무냐의 게임이다.
승률은 낮으나 판돈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기대값이 괜찮은 노름이다.
민주화 이후 벌써 한 팀이 갈리고 새 팀이 들어선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요즘도 여의도 싸움이 치열한 것은 승패의 판가름이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를 되살리려면 사회 먹이사슬을 새로 짜야 한다.
정치에 의한 시장경제활동 침해사례가 최소화돼야 한다.
직업정치인의 수를 줄이고 질을 높여야 한다.
우수한 젊은이가 유형 무형의 무엇을 생산하는 직종을 선망해야 사회가
견실해진다.
정치 지망, 관료 지망의 야망을 버리고 스스로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
남을 먹이는 것이 젊은이의 꿈이어야 하고 응분의 보상을 받는 사회여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