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탐내는 감독이다.

영화사 심부름꾼으로 출발했던 그는 "ET" "레이더스" "주라기공원" 등
숱한 흥행작을 쏟아냈다.

또 사업수완도 좋아 지금은 20억달러(한화 2조7천억원)의 재산을 가진
부자가 됐다.

동료들이 더욱 부러워하는 것은 그가 SF뿐만 아니라 "쉰들러리스트"나
"태양의 제국"처럼 재미있으면서도 작품성 높은 영화를 곧잘 만든다는
사실이다.

주말에 개봉되는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스필버그의 폭넓은 예술세계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전쟁영화다.

노르망디상륙작전을 배경으로 낙오된 공수부대원을 찾아나선 특공부대의
이야기다.

"한명의 목숨을 살리기위해 여덟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게 옳은 것이냐"를
화두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그 의미를 묻고 있다.

주인공은 톰 행크스.

"필라델피아" "포레스트 검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번이나
거머쥐었던 그는 털털하고 선량한 이미지가 매력이다.

그가 맡은 밀러 대위는 "전쟁기계"란 별명처럼 명령에 충실하면서도
마음속엔 항상 전쟁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이다.

상륙작전 직후 밀러 대위는 군인 한 명을 구출, 생환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대상은 라이언 일병(매트 데이먼).

작전도중 3명의 형들을 잃어버린 만큼 그마저 죽게할수는 없다는 상부의
배려다.

밀러 대위는 부하들의 불만을 달래가며 라이언을 찾아낸다.

그러나 동료들을 놔두고 혼자 귀환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에 특공부대는
죽음의 전장에 함께 남기로 결정한다.

스필버그는 이전에도 종종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총알이 날아들고 사지가 찢기는 전투장면을 묘사한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며 그만큼 높은 관심을 끌어왔다.

결과는 "전쟁영화사상 가장 사실적인 전투장면"이란 찬사를 받을만큼
성공적이다.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헬드 카메라를 이용, 다큐멘터리나 TV뉴스같은
느낌을 내려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영화에는 스필버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뛰어난 영상미에 휴머니즘이
교묘하게 직조돼있다.

그러나 졸병(private)을 살리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한다는 스필버그식
휴머니즘이 전쟁 자체에 면죄부를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밀러 대위의 의문은 엔딩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풀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시작과 끝부분에 곁들여진 국립묘지장면은 미국식 "국군의 시간"
같은 느낌을 주며 사족이 돼 버렸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