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는 장풍할 수 있는 산이나 언덕이 있고 동.서 양편에는 이른바
좌청룡 우백호로 불리는 구릉이 있다.

남쪽은 탁트여 멀리 안산이 보이고 그 밑으로 물이 감돌아 흐른다.

우리가 예부터 믿어오고 있는 명당의 공식이다.

옛 사람들에게는 집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묘자리였다.

조상의 묘를 명당에 쓰면 후손이 발복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명당을 찾아 일평생 산야를 헤맨 사람도 있다.

심지어 출가한 딸이 친청아버지묘에 물을 부어 못쓰게 하고 시아버지를
모시기도 했다.

명당을 차지하려고 동족끼리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 예는 허다하다.

지금도 명당에 조상을 모시려는 일부 호사가들의 "명당 찾기 노력"을 보면
풍수설의 질긴 생명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여름 육관도사로 불리는 지관 손석우씨가 어느 산간오지를 찾아갔다
는 소문이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명당을 찾으러 그곳에 몰려들어 주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또 지난달말 그가 타계한 뒤 그의 묘자리를 어디에다 썼는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는 요즘 세태는 풍수설에 대한 호사가들의 관심이 여전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땅속의 지기가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는 신비적인 풍수설은 객관적
으로는 전혀 설명이 불가능하다.

일찌기 다산 정약용은 "풍수론"에서 풍수가를 "귀신과 교접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규정하고 풍수설은 "꿈속에서 꿈꾸는 것이고 속이는 속에서 또
속이는 것"이라면서 그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는 특히 "풍수의 이치는 있다해도 옳지 못하고 없다해도 옳지 못하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라고 못박았다.

풍수설이 유행하는 이유가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권력과 재물을 획득한
사람들이 심리적 불안을 달래기 위해 신비적 요소에 기대려하는데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아직 명당에 연연해 "육관도사"의 묘를 찾고 있는 호사가들이 귀담아
들어야할 이야기다.

본래 지사는 함부로 천기를 누설하지 않는 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