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술에 배부를순 없는것 아니냐"

정부가 돈을 푼다고 하는데도 막상 돈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기업들의
아우성에 대한 정부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제 막 본격적인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한 만큼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기업들의 시각은 다르다.

은행들이 정부의 성화에 못이겨 중소기업대출에 나서고는 있지만 말그대로
"성의표시"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구조조정이 아직 진행중이고 기업부도가능성이 상존하는터라 은행들의
흉내내기식 돈풀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은행들은 여전히 몸을 사리고 있다 =재정에서 돈을 지원해 줄테니
중소기업대출을 늘리라는게 정부의 주문이다.

구체적으론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이달중 8% 이상으로
맞춰 주겠다며 제발 대출에 적극 나서라고 은행을 채근하고 있다.

아예 자금지원조건으로 중소기업대출확대를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은행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미 BIS비율 때문에 뜨거운 맛을 봤던 터다.

이런 마당에 떼일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중소기업에 돈을 대출하기는
어렵다는게 은행들의 하소연이다.

BIS비율도 맞추고 중소기업대출도 늘리라는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요구에
더이상 속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 한계기업엔 돈이 가지 않는다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중소기업대출확대를
외치고 있다.

중소기업은행은 1조원을, 조흥은행은 5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량기업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한계선상에 있거나 재무제표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는 기업은 언감생심
꿈도 꿀수 없다.

더욱이 대출조건으로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증서를 요구하고 있어 한계기업
이 은행대출을 받기란 힘들다.

은행 본점에서는 중소기업대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일선창구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부실여신을 발생시키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 언제 잘려 나갈지 불안해서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게 우량기업 찾기다.

그러다보니 당장 돈이 필요없는 우량기업엔 4-5개의 은행이 달라붙어
"제발 돈좀 써라"고 하소연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한 은행지점장은 "요즘같은 상황에서 믿고 대출해줄수 기업은 별로 없다"며
"차라리 대출을 안해주고 문책받는게 부실대출로 잘려 나가는 것보다
낫다는게 솔직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 한쪽에선 돈을 회수한다 =전철환 한국은행총재는 지난 11일 열린 경제
장관간담회에서 "은행들이 책정한 12조5천억원의 중소기업자금중 7조4천억원
이 집행됐다"며 "이 자금이 10월말까지는 모두 소진될 전망"이라고 보고했다.

이미 7조원이 넘는 돈이 풀린데다 은행들이 또 자금을 지원한다고하니
중소기업에 돈이 넘칠만도 하다.

그러나 아니다.

이유는 은행들이 돈을 푼다고 하면서 한쪽으론 돈을 회수하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지난달에만 4조3천2백60억원의 대출을 거둬들였다.

이달들어 지난 7일까지도 5천5백37억원의 대출을 회수했다.

올들어 지난 5일까지는 무려 2조73억원을 흡수했다.

대출금의 절대액을 회수하고 있는 마당이다.

심한 경우엔 기존 대출을 갚는 만큼만 신규대출을 해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의 "체감돈사정"이 나아질리 만무하다.

<> 퇴출은행 거래기업과 거래를 끊는다 =요즘 동화 동남 대동 충청 경기 등
5개 퇴출은행과 거래했던 기업은 죽을 맛이다.

인수은행들이 거래관계를 고스란히 가져갈 것이라는게 정부 설명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인수은행들은 어떡하면 거래를 끊을까 궁리하고 있다.

퇴출은행여신에 대한 담보를 50%도 쳐주지 않는다.

대출을 계속 받으려면 기존 담보만큼의 담보를 새로 내놓으라고 으름장이다.

아예 대놓고 "당신들 기업은 우리은행 여신규정에 맞지 않으니 돈을 돌려
달라"는 은행도 있다.

돈이 아무리 풀려도 돈이 돌지 않는 까닭이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