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이 섹스 스캔들로 사임 일보직전의 위기로 몰리면서 세계 금융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백악관의 "유고"로 이어진다면 그 여파가 전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끝내
사임을 발표한 뒤 다우존스 지수가 무려 15%나 곤두박질쳤었다.

모건스탠리증권사의 이코노미스트인 피터 카넬로는 "클린턴 스캔들로 인한
정치불안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클린턴이 하야할 가능성을 50%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클린턴이 중도하차한다면 상황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르게 된다.

당장 미국경제가 잘못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지도력"을 상실한 세계경제
는 방향을 잡지 못한채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는 침몰 일보직전이고 남미의 상황도 아슬아슬하다.

아시아의 위기는 장기화로 치닫고 있다.

물론 클린턴 스캔들이 미국경제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라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페인 웨버사의 포트폴리오 책임자인 커크 바네비는 "미국증시는 정치적
변수에만 휘둘리기에는 매우 고도화돼 있어 곧 활력을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팬스톡사의 수석 부사장인 앨런 애커먼씨도 "대통령이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경제는 곤경과 무관하다"며 "저물가-저금리 등의
펀더멘털이 건재하는 한 정치문제가 경제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낙관론자도 미국의 지도력 공백이 장기화된다면 세계 금융시장
의 장래는 낙관하지 못한다고 시인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워튼 경영대학원의 제레미 시걸 교수는 "9월의 미국
증시는 유동적이고 불확실한(volatile and uncertain) 장세를 보일 것"
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자체의 요인이 굳건하다고 해도 미국 안팎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
악화돼 세계 금융시장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월가에서는 클린턴 문제 자체보다는 14일(현지 시간) 런던에서
열릴 G8(서방선진 7개국과 러시아)회의 등 다른 변수를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러시아와 중남미의 상황을 호전시킬 방안이 논의된다면 클린턴
스캔들은 "스캔들"이상으로 번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클린턴 스캔들은 외부요인과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세계시장에 또하나의 소용돌이로 다가올 전망이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