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철 < 하나은행 회장 >

"지금처럼 어려운 때는 회사의 모든 경영자원과 고객을 고스란히 미국과
같은 자유로운 경쟁시장에다 옮겨놓고 그런 환경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난 7년간 홀로 호황을 누려온 미국의 시장제도를 정치체제에 관계없이
모두가 배우려 합니다.

영국이 그렇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이런 대열에 끼어들려 합니다.

일본의 개혁은 바로 미국의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고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개혁도 따지고 보면 미국식 시장경제를 하자는 것
아닙니까?"

"이런 판국에 어떻게 시장경제를 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세계경제의 밑바탕에 흐르는 변화의 본질은 간과한채
지난날의 고도성장시대를 되풀이 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한 선진국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산업구조
를 개편하고 WTO(세계무역기구)체제를 앞세워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일해
왔습니다.

우리가 IMF체제를 벗어나면 지난날과 같은 기적이 되풀이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런 시대는 벌써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경제환경은 분명히 세계화된 시장에서 모든 기업이 국적에
관계없이 무한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WTO체제하에는 외국인의 자유로운 시장참여와 그들에 대한 내국인대우를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면 사장님의 회사가 국제수준에 비해 부채가
너무 많으면 자본금을 늘려야하고 사장님의 재력이 부족하시면 다른 동업자를
모셔와야 합니다.

남과 동업하기 싫으시면 회사의 규모를 재력에 맞게 줄일 수 밖에 없겠지요.

생산시설과 규모, 종업원수와 급료수준, 그리고 그들의 생산성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런 개혁을 스스로 해낼 수 있으면 하루빨리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손해는 커갈 뿐입니다.

지난날처럼 정부의 지원은 바랄 수도 없고 정부가 그런 지원을 해줄 여력이
없을뿐 아니라 WTO 체제하에서는 해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이니 어떻게 합니까?"

필자는 요즘 어려운 현실을 호소하며 조언을 청하는 기업인들과 이런 대화를
자주 한다.

"그동안 경영을 하시면서 일본이나 미국 등지의 여러기업들을 많이 둘러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회사의 간부들과 종업원들에게 우리의 경쟁자들이 이렇게들 하고 있으니
우리는 더 잘하자고 격려하고 지도해왔을 것입니다.

그러시다면 현재 우리가 부딪쳐 있는 것 같은 난국에 처했을 때 미국이나
일본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어떻게 결단하고 행동하며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장님께서도 그렇게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필자는 묻는다.

대부분의 경우 사장님들은 "솔직히 그렇게는 못하고 있지요. 부동산을 팔고
일부 기업까지도 처분하려 하지만 어디 팔려야지요"라고 대답한다.

"규제와 제약만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무엇인가 최선을 다해 전략을
짜고 결단을 내려 행동에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사장님 같으신 CEO가
못하신다면 우리경제의 성공적인 위기극복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조언한다.

지금처럼 온 국민이 경제를 걱정한 적은 없었다.

모두가 당면한 난국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며 언제쯤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 궁금해 한다.

선진국 문턱에서 하루아침에 부도위기에 몰린 경제실상에 분개해 원인을
들추고 책임자를 찾아내 분풀이를 하려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정작 자기 영역에서나마 행동으로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도를 핑계대고 과거를 탓하며 내가 아닌 남들이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 미증유의 난국은 우리 스스로가 극복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필자는 앞에 말한 질문을 기업인들뿐 아니라 금융인 근로자 공무원 정치인
가장 주부들에게 똑같이 드리고 싶다.

우리가 여기에 행동으로 떳떳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당면한 난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극복돼갈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5일자 ).